[영화읽기]
[아줌마, 극장가다] 미성년 권하는 사회라니까, <춘향뎐>
2000-02-29
글 : 최보은
아줌마를 위대한 발견으로 몰아넣은 <춘향뎐>

사담을 공개하는 게 비열한 짓인 줄 안다. 그러나 아줌마는, 지한테 유리할 때 비열해질 줄 또한 안다.

뭐냐면, 자기철학이 매우 뚜렷한 어떤 잡지의 총수가, <춘향뎐>에 대해 아줌마가 떠드는 것을 보름씩이나 막아왔다는 사실이다. 겉으로는 다른 사람이 같은 주제로 쓰기로 했대나 어쨌대나 하면서, 속으로는 이 아줌마가 성스러운 임권택 감독에 대해서 무슨 불경죄를 저지를까, 호시탐탐 견제의 칼날을 늦추지 않았던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잡지가 <춘향뎐>에 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문장 죽이게 아름다운 각종 평문을 수백만건이나 게재하고 난 뒤, <춘향뎐>이 개봉관에서 거의 떨어지는 바람에 아줌마의 요도난담이 대세에 지장을 못 끼치게 된 뒤, 총수님은 안도한 나머지, 사석에서 이런 요지의 실언을 했다. “우린 절대로 검열 따위는 하지 않아. 그러나 임권택 감독님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한 검열기준이 있지.” 발성하지는 않았지만, 음흉한 흐흐흐소리를 아줌마는 분명히 들었다. 그러는 그의 이마에는 임권택교 광신도라는 딱지가 태극기처럼 펄럭였다. 코스닥 광란 속에서 코스피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는 정부관리라고 하면 딱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옛말에 ‘뛰연나연’이라고 했지 아마. 뛰는 년 위의 나는 년. 속으로는 아줌마가 더 음흉한 소리로, 흐흐흐, 웃고 있었던 거다. 총수아줌마, 오버한 거야. 이 평민아줌마는 젊은 남자한테만 관심있어. <춘향뎐>에 대해 떠들고 싶어 안달을 했던 건, ‘열여섯살도 섹스할 수 있다’는 진리를 한시 빨리 전도하고 싶은 졸갑증 때문이었거든.

‘과년한 나이’라는 전통유구한 관용구를 들어보셨을 텐데, 상상력이 음탕무쌍한 아줌마는 그 ‘과년’을 한자로 ‘瓜年’이라고 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즐거워 죽을 지경이었다. ‘지나칠’과가 아니라 ‘오이’과였던 거다. 오이와 합궁해도 되는 나이, 그게 과년이고 그 나이가 열여섯(열다섯인가?)살이라는 거였다. 오이를 뜻하는 영어 ‘큐컴버’의 동의어 중에도 ‘페니스’라는 단어가 있으니, 그 언어적 상상력의 보편성을 누가 말리랴.

여하간, 영화를 보면서, 또 그 뒤에 벌어진 어떤 종교시민단체와 검찰의 쌍끌이 해프닝을 보면서, 아줌마는 불현 듯 위대한 직관에 도달했다. 당시의 춘향은 분명 ‘어른’이었다. 시집갈 나이였고, 아이낳을 나이였고, 어른으로서 기능하기를 허락받으면서 동시에 요구받을 나이였다. 몽룡이도 마찬가지다. 스물이 안 되는 나이에 대과급제하고 어사패까지 휘둘렀다. 걔가 똑똑해서만이 그런 게 아니라, 그 시대 그 나이 또래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럼 요즘 춘향이 몽룡이들이 생물학적으로 퇴화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초경하는 시기, 거웃이 기웃기웃하는 시기가 광속으로 앞당겨지는 판인데.

음모론 또 나오는데, 요는, ‘어른’이라는 일반명사 속에는 사회 전체의 음모가 숨어 있다는 거다. 열아홉살까지 미성년, 그 뒤부턴 어른이라는 ‘규정’이 똥꼬 깊숙이 웃기는 거라는 거다. 대충 열대여섯살 어간부터는, 누구나 어른이다. 어른이 될 기회만 허용된다면. 김용옥만큼이나 위대한 아줌마의 발견이 등장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즉 그들에게 나눠줄 권력이 없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그들의 ‘어른됨’을 총력 저지하는 한편으로 그 당근으로 ‘소비라는 이름의’ 대체권력을 준다는 것이다. 춘향이 당시에는 인구가 고만고만해서 그들 세대에까지 돌아갈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정력폭발 인구폭발 수명폭발 시대에, 그들한테 돌아갈 감투, 회전의자, 명함, 배지, 결정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일년 가르칠 걸 이년 가르치고, 십년 먹일 걸 이십년 삼십년 먹여가면서, ‘어른됨’을 유예시키고 있다는 거다. 푸짐하게 쥐어지는 용돈이라는 건 사실 어른이 되지 말라는 뇌물이고 말이지.

어른이 될 수 있는데, 계속 미성년하라니 그 억울하고 답답한 호르몬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 랩하고 힙합하고 레게하고 언더하고 오버하고 난리 블루스하고 하고 또 하고, 극악한 경우에는 미아리 텍사스 블루스까지 하는 수밖에. 세대차이 같은 건 없어, 세대전쟁이지. ‘너 자꾸 내 자리 넘볼래? vs 너 자리 좀 안 내놀래?’ 이거지.

결론으로 영화로서의 <춘향뎐>은? 참 재미있었다. 좀 지루했지만 너무 좋았다말고는, 아줌마는 아무 할말이 없다. 별이 몇개? 하늘에 총총 뜬 게 다 별인데 뭘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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