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4500명이었다. 그리고 13명이 되었다. 1박2일의 최종 합숙 오디션을 거치고 나서는 3명의 소녀만이 교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초아(차예련), 영언(김옥빈), 선민(서지혜). 치열한 경쟁을 거친 소녀들의 <여고괴담4: 목소리>는 잊으려는 소녀와 잊혀지지 않으려는 소녀의 목소리를 간직한 영화다. 영언은 죽고, 선민은 죽은 영언의 목소리를 들으며, 초아는 선민에게 죽은 자의 목소리를 믿지 말라 하고, 선민은 영언을 잊으려 하고, 영언은 선민에게서 잊혀지지 않으려 한다.
<여고괴담4>의 첫 기자시사회가 끝난 6월29일 저녁 7시.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에게 시달린 소녀들이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감아버리는 소녀들. “기자시사회 때는 일반적인 반응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는 들었거든요. 근데 선민이랑 초아랑 옥상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에서 기자들이 막 웃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정말 심각하게 찍은 장면이었는데.” 차예련은 기자시사회의 긴장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 드라마 스케줄까지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서지혜는 “숨이 멎을 것 같아서 그냥 막무가내로 영화를 봤어요”라며 옅은 미소를 보인다. 가장 에너제틱한 소녀는 김옥빈이다. 올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사회 초년생은 촬영 때보다 훨씬 건강해진 얼굴로 장난에 여념이 없다.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니까 정신이 아찔하고, 너무 무서워서 머리도 어질어질했어요. 근데 기자간담회 때 기자들 얼굴을 쳐다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던데요. 이 사람들이 대체 우리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기자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사이 좋은 세명의 소녀 사이에서 혹여나 미묘하게 갈라지는 목소리를 잡아낼 수 있을까. 합숙 오디션에서의 피끓는 경쟁을 상기시키려 애썼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소녀다운 재잘거림이다. “우승시켜놓고서 정작 출연은 안 시켜주는 것 아니냐. 혹시 우승자는 따로 정해져 있는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고생시켜놓고 정작 <여고괴담4> 주연은 합숙 때 없었던 제3의 인물인 거 아니냐. 좋다. 만약 그러면 뒤집어엎자!” (웃음) 소녀들의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에코를 만든다.
인터뷰가 끝나고 소녀들은 사라졌다. 그들의 목소리만이 녹음기에 남았다. 녹음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슬슬 난감해지기 시작한다. 서로서로 끼어들며 떠드는 소녀들의 목소리를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다. 넋을 잃은 채로 녹음된 분량을 무작정 듣기 시작했다. 10분. 15분. 마침내 20여분이 지나자 세 소녀의 목소리가 지닌 미묘한 차이가 귀에서 걸러지기 시작했다. 소녀들의 목소리는 그렇게도 같고, 또 그렇게도 다르다.
“예쁜 척만으론 안 되던걸요”
차예련_‘초아’
<여고괴담4: 목소리>에 출연하기 전에는 간간이 CF도 출연하면서 모델 일을 하고 있었어요. 드라마 출연섭외도 있었지만 영화배우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특히 <여고괴담> 같은 영화로. 정말이라니까요. (웃음) 사실 하고 싶었던 역할은 … 음… 초아요. 아니 선민. 아니 초아. 합숙 오디션을 하면서 역할들이 골고루 떨어졌는데, 저한테는 선민 역이 주어졌었어요. 사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초아에게 더 끌렸는데, 선민이라는 역할을 천천히 분석해보니까 또 나름 매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초아, 오디션 당시에는 선민이 탐이 났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초아 역을 맡게 되었어요. 물론 맨 처음에 탐났던 초아 역이 떨어져서 더 좋았어요.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웃음) 초아는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암시를 주는 말들을 툭툭 내뱉는 게 좋아요. 그거 다 나도 처음 듣는 말들이에요. 개와 늑대의 시간? 게다가 그런 말들을 하면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웃음) 여고 시절에는 활발했어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두루두루 친했어요. 초아랑 비슷한 게 없냐고요? 만약 우리반에 초아 같은 애가 있었다면 절대로 먼저 말을 걸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애는 좀 가려가며 사귀어야죠. (웃음) 첫 촬영날, 슬레이트가 눈앞에서 탁! 하던 순간 외운 대사도 못할 것 같았어요. CF 찍는 카메라가 영화 카메라랑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잔뜩 자신감을 안고 촬영장에 갔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비슷하더라고요. (웃음) CF 찍을 때는 예쁜 척만 해도 되는데, 영화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 게다가 첫날에 옥상이랑 공원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랑. 중요한 장면부터 시작했어요. 그래서 더 부담감이 심했죠. 또 스탭이 워낙 많다보니까 이 사람들이 나랑 원래 친한 사람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하겠던데요. 뭐 그런다고 특별히 연기가 더 잘되는 건 아니었지만. (웃음) 정말 좌절한 순간이 올까봐 자∼알 대처를 했죠. (웃음) 일단은 저 자신에게 자신감을 많이 불어넣었어요. 초아라는 아이가 나랑은 성격이 정반대거든요. 초아 보세요. 웃지도 않고. 감정선이 별로 없잖아요. 물론 지혜나 옥빈이처럼 기복이 심한 역이 아니어서 고통스럽게 부딪히고 했던 부분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여튼 제가 자∼알 대처를 했죠. (웃음)
“개와 늑대의 시간이네. 멀리서 걸어오는 동물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시간이란 뜻이야. 진실이 은폐되는 시간이면서 때로는 진실이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하지.” -초아-
“얼짱 콘테스트, 행운이었죠”
김옥빈_‘영언’
<여고괴담4: 목소리>에 출연하기 전에는 신참내기 연예인 지망생이었어요. 네이버 인터넷 얼짱 콘테스트에서 3만명 중에 뽑혀 서울로 올라오게 된거죠. 행운이에요. 그런데 사실 중·고등학교 때 꿈도 배우였어요. 지방에 살다보니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원래 하고 싶었던 역할은 초아였어요. 무심한 매력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런데 오디션 현장에 가서 전체 대본을 보니까 영언이가 더 마음에 들데요. 영언은 홀로 남겨진데다 극심하게 외로운 상황에 처한 애잖아요. 사실 그런 면에서 나랑 되게 비슷하기도 하고. 아까도 보셨겠지만 제가 원래 장난이 많거든요. (웃음) 사람을 참 좋아하고 외로운 걸 못 견디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랑 닮은 영언에게 확 끌렸죠. 여고 시절에는 표면상으로는 친하지 않은 애들이 없었죠. 그런데 마음을 탁 터놓고 지내는 애들은 정해져 있었어요. 저는 울타리가 있거든요. 울타리 안쪽으로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긴장하고 밀어내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중·고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늘 같아요. 의외죠? 첫 촬영날, 슬레이트가 눈앞에서 탁! 하던 순간 한숨이 났죠. 첫 촬영이 선민과 초아가 옥상에서 담배 피우는데 그걸 바라보다가 혼자 걸어가면서 우는 장면이었거든요. 첫 촬영부터 울어야 하는데 감정도 안 나고 캐릭터도 잘 모르겠고 현장에 적응도 안 되고. 게다가 움직이는 카메라와 내 걷는 속도를 맞추거나 뭐 그런 것도 해결해야 하니까. 휴우, 정말 이런 게 영화구나, 싶었죠 뭐. 정말 좌절한 순간은 모든 순간이죠. 영화가 처음이잖아요. 영화만 처음이 아니라 이런 게 다 처음이지만. (웃음) 그래서 카메라 보고 연기하는 것 자체가 안 되던데요. 게다가 내가 생각한 영언이의 감정과 감독님의 생각이 다를 때는 어떤 지점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작정하고 우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대체 내가 왜 눈물을 흘려야 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우리 강아지가 죽었네. 아이고 엄마가 돌아가셨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울고 있는데 감독님이 컷! “영언아, 나는 거짓말 하는 게 제일 싫어. 너는 눈만 보면 빤히 보이거든.” (웃음)
“미안해 선민아. 나 때문에. 그래도 내 곁에 영원히 있어줄 거지. 니가 없으면, 난 사라져. 제발 부탁이야. 내가 왜 죽은지도 모른 채 이대로 사라질 순 없어.” -영언-
“춤추는 천사, 기억나세요?”
서지혜_‘선민’
<여고괴담4: 목소리>에 출연하기 전에는 춤추는 천사였죠. 아시죠 춤추는 천사 CF? 그 CF에 조승우씨와 같이 출연한 계기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KBS 미니시리즈 <그녀가 돌아왔다>에도 주연급으로 캐스팅이 되었어요. 방송 스케줄과 <여고괴담4> 홍보 스케줄이 겹쳐서 몸이 둘이라도…. 사실 하고 싶었던 역할은 지금 제가 맡은 역할과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선민 역할이 탐났거든요. 결과적으로는 하고 싶은 걸 딱 하게 된 거죠. 초아나 영언도 매력이 있지만, 선민이 가진 평범하고도 강한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약한 모습과 강한 모습을 동시에 지닌,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여고생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모습들에 제일 끌렸어요. 여고 시절에도 선민이랑 비슷했어요. 그리 여성스럽지도 않고, 보이시한 면이 많은 편이었고. 정말이에요. 고딩 때는 되게 평범했어요. 그냥 진짜 고딩이었어요. (웃음) 첫 촬영날, 슬레이트가 눈앞에서 탁! 하던 순간 CF나 드라마 출연으로 작은 카메라에는 익숙해진 상태였는데도 노심초사 걱정이 되더라고요. 첫 촬영에 들어간 순간 딱 한 가지만 생각했어요. 카메라를 이기자. 가슴도 덜덜 떨리고 마음도 심란해진 상태였지만 그 구호 하나만 의지하며 모든 걸 버틴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겼냐고요? (웃음) 아유. 이기려면 아직 한참 남았죠. 정말 좌절한 순간은 매 순간이었어요. 늘. 항상. 부딪혔죠. 제가 드라마나 CF를 조금씩 하긴 했어도, 첫 주연작인 영화를 찍는다는 부담감은 또 다르더라고요. 연기하면서도 정말 이 감정이 맞는지. 동작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감독님과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많은 작품을 한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10년 뒤에도 계속해서 한계에 부딪힐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에게는 진짜로 도움이 되는 것 같고. 또 배우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니가 영언이라는 건 믿겠는데, 니가 죽었다는 건 믿을 수가 없어. 나하고 이렇게 말하고 있잖아.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아무것도 변한게 없잖아.” -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