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멜린다와 멜린다> 우디 앨런 최고의 입담을 들어보자
2005-07-11
글 : ibuti
부록이 없어도 반가운 타이틀

주변에 널린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래서 죽기 전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우디 앨런. 하지만 스타를 동원해 만든 근작들이 심심했던 편이어서 이야기꾼 앨런도 끝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던 차에 <우디 알렌의 부부일기>(1992) 이후 가장 놀라운 작품인 <멜린다와 멜린다>로 그가 돌아왔다.

<멜린다와 멜린다>는 알랭 레네의 <스모킹> <노스모킹>처럼 한 갈래에서 뻗어나간 몇 가지 이야기를 엮는다. 영화 속에 열린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영화가 있고, 영화와 영화 그리고 이야기와 이야기가 대화를 나누는 정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네 사람이 식당에 둘러앉아 있다. ‘삶의 본질이 비극이냐 희극이냐’를 두고 두 작가의 설전이 한창인 가운데, 다른 친구가 설정 하나- 고통스런 시기를 막 지나온 멜린다란 여인이 디너파티를 하던 일군의 사람들 사이로 불쑥 등장한다- 를 내놓으면서 이건 어디에 속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두 작가의 입으로 재단된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기 시작한다.

<멜린다와 멜린다>는 분명 하나의 비극과 하나의 희극이란 결말로 이어진다. 우울한 표정의 사람들이 염세적인 대사를 내뱉는 한쪽 옆에선 삶에 낙관적인 사람들이 유머를 나눈다. 극중 표현을 빌리자면 그 간극은 말러의 음악과 스윙재즈, 셰익스피어와 에드거 앨런 포 사이의 그것처럼 벌어져 있다. 그러나 시작과 끝이 제대로 없는 두 갈래 이야기를 통해 앨런은 삶이란 양면적인 것이어서 결국 대하는 자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것 같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와의 인터뷰에서 앨런은 사실 양쪽을 명확하게 구분하려 한 건 아니었으며, 자신은 희극의 공간이 마련된 비극에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올해로 칠순을 넘긴 우디 앨런은 이제 삶의 진실과 영화에 감춰진 비밀에 가까이 다가선 것처럼 보인다. 예전보다 많이 무거워졌다고는 해도 앨런의 인물들이 내뱉는 말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대사로 손색이 없으며, (그의 영화에 나온 배우들이 대부분 그랬듯) 앨런 식으로 발음하는 윌 페렐을 보는 건 뒤집어지는 즐거움이다. 다시 말하건대 <멜린다와 멜린다>는 우디 앨런의 후반 경력을 대표하는 걸작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선 제대로 개봉도 못한 이 영화의 DVD가 미국보다 먼저 출시됐다. DVD엔 부록 하나 없지만 제작사를 욕할 일은 아니다. 여태 나온 그 어떤 앨런 영화의 DVD도 변변한 부록을 갖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감은 입 닥치고 영화나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지금도 모노 사운드만을 고집하는 그 앞에서 화려한 DVD가 웬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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