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처용의 후손, 모험을 떠나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촬영현장
2005-07-11
글 : 김수경
사진 : 이혜정

뜨거운 햇살 아래 경복궁 방향으로 차들이 한가로이 지나간다. 차창을 열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롭지만 차량을 통제하는 제작부는 비지땀이 흐르고 애간장이 녹는다. 2평 남짓한 효자동 근처 도장방을 기준으로 스탭들이 동심원을 그리고 모여 있다. 도장방의 오른쪽은 감독의 모니터, 동시녹음, 현장편집의 진지로 자리잡았다. 이곳은 김태식 감독의 데뷔작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촬영현장이다. 경복궁 왼쪽 돌담길과 효자동 사거리 사이에 있는 로케이션이라 슛사인이 떨어지면 양쪽 끝은 제작부들이 운전자들에게 매번 통사정하며 길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경찰봉을 들고 길을 막는 제작부 막내들이 좀 수상하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건 개인사겠지만 너무 여유롭다. 카메라와 연결되는 비디오라인을 챙겨주고, 조명세팅도 도와주고, 현장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핀다. 알고 보니 제작부 막내들은 둘 다 이미 충무로에 입성한 감독들. <나두야 간다>의 정연원 감독과 <뚫어야 산다>의 고은기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정연원, 고은기 감독 모두 김 감독의 박철수 연출부 시절 후배이며, 정 감독은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오전에 고사를 지내고 곧바로 촬영에 돌입했다. 아내(김성미)의 부정을 확인하려고 길을 떠나는 주인공 ‘손님’(박광정). 아내는 택시기사 중식(정보석)과 바람이 났다. 박광정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지만, 분노나 현실 때문에 실행치 못하는 행동을 풀어내는 영화”라고 설명한다. 아내의 부정을 발견한 ‘손님’은 응징보다는 추적을 택한다. 김 감독의 “성인들의 감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라는 전언답게 노출 수위가 높은 대목도 다수 포함된다. 주인공은 중식의 차를 타고 강원도 낙산까지 동행한다. 촬영이 시작되고 주인공은 도장 모양의 모형물을 옮기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크랭크인이라 현장에 손님이 많은 편이다. 박철수 감독이 왔다가 돌아가고 바통을 터치하듯 촬영분량이 없는 정보석이 도착했다. 첫신이 마무리되고 ‘손님’이 도장방으로 돌아오는 68신으로 넘어간다. 도장을 파러 온 여학생 단역이 등장한다. 언뜻 박슬기인 줄 알았더니 이경의 작가다. 그녀는 올해 <씨네21> 막둥이 시나리오 공모 당선자다. ‘왕고모님’의 내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두세 테이크 만에 OK를 받아낸 초심자는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해가 저물고 차량은 늘어간다. 김태식 감독은 도장방 실내 세팅에 신경을 쓰느라 밖이 어두워진 것도 모르는 눈치다. 카메라를 잡은 박철수 감독의 오래된 콤비인 이은길 DP(Director of Photography)도 인서트컷에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도장방 외부 전체에 검은 커튼을 두르고 진행한 끝에 겨우 마무리되는 촬영. 첫발을 내딛은 로드무비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7월경 크랭크업을 목표로 한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