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대리석 인간> 폴란드 역사와 같이 호흡한 영화
2005-07-11
글 : ibuti

안제이 바이다의 영화가 리얼리즘의 색채를 확고하게 띠기 시작한 건 <대리석 인간> 이후부터다. <대리석 인간> <철의 인간>은 영화가 역사, 기억, 진실 그리고 책임감과 함께한 대표적인 예로서, 실제로 폴란드 자유화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맡았다. <대리석 인간>은 1976년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개인이 1950년대의 노동영웅을 찾아내 잊혀진 역사를 기억한다는 이야기다. 졸업작품을 만드는 아그네츠카는 폴란드가 스탈린 지배 하에 있던 1950년대 초반부터 폴란드의 봄으로 불리는 1956년 10월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벽돌쌓기의 대가 비르쿠트의 영광과 몰락을 추적한다.

유사 다큐멘터리, 다양한 인물과의 조우와 플래시백, 하나씩 들춰지는 진실 등 <대리석 인간>은 <시민 케인>의 자장이 미친 작품 같다. 하지만 <대리석 인간>은 영화란 매체의 완성보다 휴머니즘의 고양에 그 의미를 둔다. <대리석 인간>은 진심어린 마음을 간직한 비르쿠트라는 인물과 그의 이상향에 대한 갈망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자, 새로운 세대가 자유와 평등과 사회정의를 향한 혁명을 계속하기를 바라는 당부다.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 유지에 급급해 인간을 선전도구로 이용한 정치권력을 비판한다. 그들이 염원했던 사회주의는 혁명의 완성이 아니었다. 책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짜 혁명은 절대 멈출 수 없는 법이다.

영화의 마지막, 아그네츠카는 방송국의 지원이 끊겨 영화의 완성을 포기할 뻔하지만,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카메라와 필름 그리고 스탭 없이 혼자 비르쿠트를 찾아 떠난다. 그 순간 <대리석 인간>은 영화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녀가 비르쿠트를 찾지 못하고 대신 그의 아들을 만날 때 <대리석 인간>은 미래의 약속을 기대하게 하고, 기어코 두 사람의 이야기는 1980년 그다인스크 레닌 조선소의 파업을 다룬 <철의 인간>으로 이어졌으며, 온갖 탄압에 시달리던 바이다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9년 뒤, <철의 인간>에 등장했던 자유노조의 지도자 레흐 바웬사는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영화와 현실이 이보다 더 극적으로 호흡한 적은 없었다.

안제이 바이다의 대표작 <재와 다이아몬드> <대리석 인간> <철의 인간>의 DVD를 출시한 베네딕도 미디어는 10여 년 전부터 주로 동구권 예술영화를 홈비디오로 보급한 곳이다. 그 작품들을 보면서 영화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했던 기억 때문인지, 비디오에 가까운 세편의 DVD를 보면서도 오히려 반가움이 앞선다. 부록 하나 없는 DVD라고 해도 정성껏 준비된 영화와 감독에 대한 소개책자는 값진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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