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그루지> 호러 대가들의 유쾌한 음성해설
2005-07-14
글 : 한청남
오리지널 단편으로 '주온'의 원점을 확인한다

비디오 영화로 제작된 오리지널 <주온>에서 두 편의 극장용 <주온>까지 보아온 사람들은 <그루지>를 대한 기대가 남달랐을 것이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같은 감독이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색다르게 풀어간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아냈고, <스파이더맨> 훨씬 이전에 걸출한 호러 명작 <이블 데드>를 만들었던 샘 레이미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제작된 영화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루지>는 동서양의 만남이 부자연스러운 또 다른 할리우드산 리메이크 졸작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필자 역시 애당초 원작을, 특히 비디오판 <주온>을 뛰어넘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양적 한과 저주를 서양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잘 짜여진 각본과 함께 크게 이질감 없는 연기를 선보인 미국 배우들의 연기는 꽤 근사한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영화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원작 시리즈를 너무 충실히 옮겨온 나머지 마치 데자뷰 같은 영화가 된 것이 아쉽지만, 우수한 장비와 인력 그리고 할리우드 대자본의 힘으로 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재창조된 또 다른 <주온>이라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작품이다.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그루지> DVD는 그러한 영화 이상으로 흥미진진한 구석이 많은 타이틀이다. 기본적으로 본편은 일본에서 개봉된 감독판을 수록했다. 북미 지역에서는 개봉 당시 관람 등급을 낮추기 위해 죽은 자들의 얼굴 클로즈업 등 잔인한 장면과 몇몇 대화 장면들이 삭제됐는데 그것이 복구된 버전이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삭제가 이루어진 북미 개봉판을 부록 디스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샘 레이미 등 미국 쪽 스탭들이 참여한 음성해설을 위해 북미판 영상을 수록한 것으로써, 온전한 사운드로 감상할 수는 없지만 본편 디스크의 감독판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부록으로 준비된 음성해설은 두 종류. 앞서 언급했듯이 부록 디스크에는 미국 측 스탭들(제작 총지휘자 샘 레이미, 각본가 스티븐 수스코, 주연 사라 미셸 겔러 외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본편 디스크에는 감독 시미즈 다카시, 일본측 제작자 이치세 타카시게, 그리고 공포의 원흉 ‘가야코’ 역을 맡은 후지 타카코가 참여한 일본 측 스탭들이 포진했다. 한 영화에 대한 동서양의 색다른 견해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음성해설이야말로 <그루지> DVD의 최대 매력이 아닐까 싶다.

우선 일본측 음성해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 하지만 마냥 진지하기만 한 음성해설이 아니라 장난기 많은 감독과 제작자가 실없는 농담으로 때때로 후지 타카코를 놀려먹는 내용이 담겨 있어 듣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다음 편에서는 디지털 가야코가 나오기 때문에 당신은 필요 없겠죠”라는 이야기에 사실인양 질겁하는 여배우의 반응이 재밌는데, 그녀가 과연 그 무시무시한 ‘가야코’가 맞는지 의심스러워질 정도다.

미국측 음성해설은 여러 인원이 참여한 가운데, 활달한 성격으로 대화를 주도하는 사라 미셸 겔러에 의해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일본에서의 촬영에 얽힌 황당한 에피소드와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경험담 등이 주를 이루면서도 주요 장면이 나올 때는 그에 대한 해설도 빼놓지 않는다. 참석한 이들 모두 시미즈 감독이 매사를 꼼꼼하게 챙기면서 배우들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에 대해 칭찬하고 있다.

사라 미셸 겔러 인터뷰
시미즈 다카시 감독
촬영 현장의 모습
스튜디오 안에 지어진 흉가

총 다섯 챕터로 이루어진 메이킹 필름에는 <그루지>가 제작되기까지의 과정을 비롯해, 미국 배우들이 일본문화에 적응하는 모습,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이기도 한 흉가가 만들어지는 모습, 시미즈 다카시의 독특한 연출법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일본측 스탭들의 해설이 곁들여지는 삭제장면의 내용이 무척 풍부한데, 요코가 가야코에게 살해되는 장면을 본편과 조금 다르게 찍은 도입부 영상과 사에키 일가의 행복했던 한때를 잠깐 보여주는 또 다른 엔딩도 포함되어 있다. 시간상 포함되지 않은 몇몇 삭제 장면의 경우 기존의 <주온> 시리즈에서 봤던 장면들을 거의 그대로 재구성한 것도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미즈 다카시의 단편 영상은 <주온> 팬들이라면 반드시 봐둬야 할 특별한 부록이다. <4444444444>와 <구석에서>라는 제목의 이 두 단편은 시미즈 다카시가 영화계 데뷔 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추천으로 간사이 TV에서 제작한 괴담 옴니버스 작품이다. 이를 본 <링>의 각본가 다카하시 히로시가 비디오판 <주온>의 제작을 맡겼으며, 그것이 시미즈 감독을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 내용적으로도 이 작품들은 <주온>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바로 가야코와 토시오 모자의 공식적인 첫 데뷔작인 것이다. 벌건 대낮에 고교생들을 엄습하는 공포! <주온>의 원점을 확인할 수 있는 진귀한 작품들이다.

단편작품 <4444444444>
<구석에서>

<더 링> 이후 보이지 않는 공포에 주목한 할리우드와 시미즈 다카시의 참신한 재능이 만난 이색 공포 영화 <그루지>. 본편 이상의 흥미로운 부록들이 만족감을 더해 DVD로 찾아왔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DTS 음향이 조금 어색하게 제작되어 때때로 볼륨 레벨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소리가 죽는다. 다행히 돌비 디지털 5.1 음향은 기대했던 대로 파워풀하게 재생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감상할 것을 권한다. 특히 기괴한 효과음과 토시오의 발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는 챕터 9의 사운드는 섬세하면서도 무시무시하다. 화질은 일견 거칠어 보이지만 영화에 특성에 맞는 의도적인 영상으로 여겨지며, 어두운 다락방의 구석까지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어 감상에 큰 지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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