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변호사이긴 하지만 영화쪽 사람들에게 조광희(34)라는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영화검열 철폐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일에 발벗고 나선 것은 물론, 영화와 관련한 갖가지 일에 공식·비공식 자문에서부터 법적 대리인 노릇까지 해왔기 때문이다.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참여해 영화와 영화인들 편에 서서 국가보안법에 맞서 싸웠으며, 98년에는 영화 <어게인> 연출을 준비하던 이순안 감독이 제작사를 상대로 낸 ‘영화제작 및 저작권침해금지 가처분신청’에 “이유있다”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당시 이 결정은 비록 가처분 신청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 관련 저작권에 대한 법원의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조광희 변호사의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한 제작사의 횡포에 처음 법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무게를 갖는다.
이 사건 이후 독립 영화쪽은 물론 영화계에서는 마치 무슨 해결사인 양 그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조광희 변호사도 영화계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 때면 기꺼이 응한다. 일반 사건도 맡고 사례를 받는 상업 영화 제작사나 투자사의 자문도 하지만 영화쪽 일의 절반 정도는 ‘공익적’인 일이다. 이처럼 조광희 변호사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일 등 ‘돈 안 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본연의 권리를 누리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말> 소동’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지난 2월10일,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거짓말> 관련 시민사회단체 합동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조광희(34) 변호사는 ‘절묘한’ 비유를 섞은 빼어난 논리로 <거짓말>을 음란물로 규정하고 고발까지 한 상대 토론자들을 ‘제압’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 있지만, 보라고 강요하지 않는 한 성인에게 제공하는 영화에 대해 상영을 막기 위해 물리적인 힘으로 강제하려는 것은 편견에 기초한 파시즘이다. 자기 눈에 거슬린다고 다른 사람의 표현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사회의 다원성을 해치는 치명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영화와의 인연은 깊다. 어려서부터 열성 관객이었던 것은 물론 사법연수생 시절에는 김기중 변호사 등과 함께 영화 감상도 하고 영화관련 법률 공부도 하는 ‘빛소리’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90년대 중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언론위원회에서 영화법 관련 발제를 하면서 공부한 것이 영화쪽 일을 하게 된 한 계기가 됐다. 그뒤에도 민변 기관지 등에 영화감상문 등을 기고하면서 ‘영화와 가까운 변호사’로 알려지게 됐다. 지금도 꼭 보고 싶은 영화는 일과중에도 ‘땡땡이’치고 극장에 간다. 영화 보면서 잘 운다는 조광희 변호사는 변호사이면서 ‘술집 주인’이다. 98년 민변에서 같이 활동하는 김도형, 이형근 변호사와 함께 “문화적 공간에 대한 목마름을 풀기 위해” 신촌에 ‘레지스땅’이라는 카페를 열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들러 음악도 틀고 손님도 맞는다.
영화쪽에서 법률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으며, 영상물 저작권과 관련해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인터넷 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두 차례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둘 하나 섹스> 제작진의 대리인으로 영상물등급위와 현행 등급분류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기 위한 준비도 끝냈다. 지난해에는 예기치 않은 ‘외도’를 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옷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한 최병모 특별검사의 특별수사관으로 활동한 것. “권력은 집요하고, 생각 이상으로 사회의 섬세한 부분까지 정치화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특검 수사관 활동 소감이다. 한 가지 억울한 것은 영화쪽 일에 자주 나서면서 동료 변호사들로부터 ‘유명한 배우들 만나서 노는 줄’ 알고 시샘을 받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