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복수 트릴로지 마지막을 장식하는 <친절한 금자씨>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는, 한국 영화 사상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카메오들의 출연이다. 송강호, 신하균, 유지태, 강혜정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자들을 비롯해 평소 박찬욱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류승완 감독까지, 이들의 깜짝 출연을 보는 것도 하나의 큰 볼거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영화에서 카메오들이 출연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는 ‘복수 삼부작’을 결산한다는 의미에서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에 나왔던 이들이 기꺼이 우정출연을 해줬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단순히 유명인들이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잔재미가 아니라, 영화의 주제의식을 보다 강화하면서 삼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이다.
DVD토픽에서는 카메오 출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서부터, 복수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복수는 나의 것>까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 속의 유명한 카메오 장면들을 다뤄보기로 했다. 물론 여기서 다루는 영화들은 국내 발매된 타이틀 기준이며, 극히 일부분임을 밝힌다.
<새> - 알프레드 히치콕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감독 본인의 카메오 출연이다. 자신의 영화에 어떤 식으로든 등장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이 감독은, 심지어 구명보트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화 <라이프 보트>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다이어트 광고가 실린 신문 속의 뚱뚱한 남자 사진으로 말이다. 이런 기발한 그의 전략 때문에 영화 속 그의 모습을 찾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생길 정도. 이로 인해 관객들이 중요한 스토리를 놓칠까 우려한 히치콕 감독은 후기작품부터는 누구나 찾기 쉽도록 영화 초반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새> 역시 그러한 감독의 배려(?)가 엿보이는 작품으로 영화 타이틀 장면이 지나간 지 1분도 채 안된 시점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애완동물 가게 입구에서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 티피 헤드런과 스쳐지나가는 역으로 나오는데, 강아지들의 목줄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노감독의 풍모를 더욱 익살맞게 해준다. 참고로 이 강아지들은 감독이 직접 길렀던 개들이라고.
<인디아나 존스> - 댄 애크로이드
댄 애크로이드는 <블루스 브라더스> <고스트 버스터즈> 등의 대표작들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코미디언 겸 배우다.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의 초반부에 카메오 출연하였는데, 악당 라오 셰의 추격을 따돌리고 공항에 도착한 인디아나 존스 일행을 안내하는 직원 역을 맡았다. 애크로이드는 카메라에 가깝게 잡히지 않고, 단번에 정해진 동선을 휙 지나가기 때문에 식별이 쉽지는 않지만, 정신없이 빠른 말투로 대사를 연발하는 그의 특징적인 목소리만으로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애크로이드의 출연은 <블루스 브라더스>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카메오로 출연했던 보답으로 성사된 것이다.
<천상의 피조물> - 피터 잭슨
히치콕만큼은 아니지만 피터 잭슨 역시 자신의 거의 전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감독이다. 국내에서 그의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말할 것도 없고(3편의 경우 확장판에서 모습을 비춘다), 그의 초창기 작품인 <배드 테이스트>에서는 아예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피터 잭슨이 맡은 배역들 중에서도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면 <반지 원정대>에서 호빗들과 잠깐 마주치는 거지꼴을 한 사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부러진 당근을 든 모습이 무척이나 처량해보였는데, 이번에 소개할 <천상의 피조물>에서도 만만치 않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바로 영화 속 두 여주인공들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극장을 뛰쳐나와 마주치는 부랑아 역으로 출연한 것. 케이트 윈슬렛의 키스 세례를 받으면서도 귀찮다는 듯한 표정이 무척이나 사실적인 게 그야말로 세상사에 지친 피곤한 거지 모습 그대로다. 반지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이제는 갑부가 되었지만 그의 천성은 아마도 그런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트루 로맨스> - 발 킬머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연기한 이 영화의 주인공 클레런스는 영화와 만화책, 엘비스 프레슬리에 흠뻑 빠진 청년이다. 특히 엘비스는 클레런스의 정신적 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에게는 우상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클레런스가 엘비스와 가상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인데, 수많은 배우들이 엘비스의 연기를 해 왔지만 이 잠시 동안의 등장만으로도 엘비스를 완벽하게 재현한 장본인은 바로 발 킬머다. 놀랍게도 그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영화 크레딧에서나 등장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 단지 엘비스 특유의 동작과 말투만으로도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멋지게 해 냈다.
발 킬머는 이미 1991년작 <도어즈>에서 뮤지션 짐 모리슨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적이 있으며 서부극 <툼스톤>에서는 닥 홀리데이, <알렉산더>에서는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립 역을 맡는 등 실존인물의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다.
<포레스트 검프> -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
한 바보를 통해 미국의 근대사를 되짚어본 영화 <포레스트 검프>. 톰 행크스의 기막힌 연기만큼이나 인구에 화자 되었던 것은 바로 영화 속에 등장한 실존인물들이다. 존 F. 케네디, 닉슨 등 역대 대통령들은 물론 존 레넌, 엘비스 프레슬리 등 이미 고인이 된 유명인사들이 발달된 CG 기술을 통해 포레스트 검프와 자연스럽게 한 화면에 담긴 모습은 당시로선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였던 것은 풋볼 대회에서 우승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팀을 케네디 대통령이 치하하는 장면. 대통령 앞에서 오줌이 마려워 어쩔 줄 모르는 포레스트의 모습과 함께 그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이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실제 역사를 담아놓은 듯한 생생한 장면으로까지 여겨진다. 이러한 연출에 맛을 들인 저메키스 감독은 다음 작품 <콘택트>에서 아예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을 출연시켰다. 하지만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출연시킨 것이 대해 클린턴 자신은 무척 유감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사우스 파크 극장판> - 조지 클루니
귀여운 모습을 한 꼬마들이 걸쭉한 욕지거리를 일삼는 발칙한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그 극장판에서 특히 눈에 띄는 성우는 바로 할리우드의 마당발 조지 클루니다. 그는 트레이 파커 감독이 <사우스 파크> 시리즈를 탄생시키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인물이면서 동시에 TV 판에서는 게이 강아지 ‘스파키’ 역을 맡기도 했다.
극장판에서는 자신의 출세작 <ER>에서처럼 의사 역으로 나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는데, 평범한 의사도 아닌 돌팔이 의사로 출현해 주요 캐릭터인 케니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역할을 맡았다. 수술을 한다는 명목으로 심장을 꺼내 대신 감자를 집어넣는 장면을 진짜 의사 같은 목소리로 리얼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압권. 덕분에 주인공들로부터 "이 개XX!"이라는 욕까지 먹게 되지만 아마도 그는 자신의 황당한 연기를 무척 즐기지 않았을까 싶다.
<새벽의 저주> - 톰 사비니, 켄 포리
최근 들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영화를 만들 때에는 원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카메오로 등장시키는 경향이 크다. 이는 원작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원작 팬들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는데, <새벽의 저주>에 깜짝 출연한 톰 사비니, 켄 포리 역시 그런 케이스다.
일반 영화 관객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특수분장의 대가로 호러팬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톰 사비니는 자신의 작업한 영화들에 종종 출연함은 물론 영화감독도 맡고 있는 다재다능한 인물. 특히 <새벽의 저주>의 원작인 <시체들의 새벽>에서 폭주족으로 출연한 그는 자신이 분장시킨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새벽의 저주>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TV 방송에 출연한 보안관으로, 좀비들의 약점은 머리통이라고 알려주는 꽤나 중요한(?) 인물을 연기했다.
그리고 TV 방송의 목사 역을 맡은 켄 포리 역시 원작 영화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인물. 바로 <시체들의 새벽>의 주인공 피터 역을 맡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좀비들의 출현이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재앙이라고 역설하는 모습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스파이더맨> - 스탠 리
스탠 리는 1960년대 스티브 딧코와 함께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마블 코믹스의 유명 캐릭터들을 창조한 인물이다. 2000년 이후 마블 슈퍼 히어로 영화가 히트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자연스럽게 알려진 ‘스파이더맨의 아버지’답게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에 깜짝 출연한다. 그는 <스파이더맨 2>에도 카메오로 출연하였으며, <엑스맨> <데어데블> <헐크> <판타스틱 4> 등의 다른 마블 슈퍼 히어로 영화에도 얼굴을 비쳤다. 늘 올백 흰머리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영화에 나오므로 한 번 얼굴을 익히면 찾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스파이더맨>에서는 그린 고블린이 퍼레이드를 습격하는 장면에서 우왕좌왕하는 군중들 속에 섞여 나온다.
<킬 빌 Vol. 2> - 새뮤얼 L. 잭슨
새뮤얼 L. 잭슨은 1994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에서의 열연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배우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이후 잭슨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배우로서 각광을 받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타란티노 감독의 다른 작품에도 출연하게 되는데, 특히 최근작 <킬 빌 Vol. 2>에서는 카메오에 가까운 단역으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초반부, 흑백으로 선보이는 브라이드의 결혼식 예행연습 장면에서 악사인 루퍼스 역을 맡은 그는 화면 한 구석에 처박힌 채 몇 마디의 대사를 할 뿐이어서 처음에는 정말 새뮤얼 잭슨인가 싶지만, 이내 그만의 독특한 목소리와 억양을 알 수 있다. 루퍼스는 잠시 후 빌의 부하들에 의해 허망하게 죽어버리지만, 굉장한 내공을 가진 듯한 정체불명의 악사 역은 짧지만 굵은 카메오로서 부족함이 없다.
<슈렉 2> - 사이먼 코웰
엄밀히 따지면 영화 본편에 나오는 인물은 아니지만, <슈렉 2> DVD 부록에 등장하는 사이먼 코웰은 영화의 무수한 패러디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십대스타를 선발하는 인기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의 심사위원으로서, 평소 무자비한 독설로 출연자를 깔아뭉개는 그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되어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겁나먼 아이돌’ 심사위원이 된 그는 동화나라 캐릭터들의 장기자랑 또한 여지없이 비판한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승부조작까지 일삼는다. 마지막에 DVD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우승자를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탈락시키고 대신에 자신이 우승했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평소 그를 싫어했던 사람에겐 기가 막힐 장면일 것이다.
<빌리지> -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식스 센스> <싸인> <빌리지>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찍으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는 데도 익숙하다. 그는 알프레드 히치콕처럼 자신의 영화에 작은 배역을 맡아 출연해 왔는데, 최근작 <빌리지>에서는 대단히 딱딱거리는 말투가 거슬리는 경비원 역으로 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 등장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데, 의약품 저장고의 유리를 통해 비치는 얼굴은 딱 보아도 ‘감독이구나’ 싶은 인상이다. 그는 인도 출신으로, 다른 미국 배우들 사이에서 외모만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복수는 나의 것> - 류승완, 류승범, 정재영, 이금희
<복수는 나의 것>은 이후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박찬욱 복수 3연작’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딸을 잃은 한 남자의 소름끼치는 복수극을 냉정하게 묘사한 이 영화에서는 여러 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깜짝 등장한다. 가장 눈에 띄는 배역은 류승범과 류승완 감독 형제. 류승범은 극중 류(신하균)가 죽은 누나를 묻는 모습과 그에 의해 유괴된 동진(송강호)의 딸이 익사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지체장애인 역을 맡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류승완 감독은 짜장면 한 그릇을 배달시켰다고 툴툴거리다가 송강호에 의해 살해되는 운 더럽게 나쁜 중국음식점 배달부 역을 맡아 잔혹하기 짝이 없는 영미(배두나)의 고문 장면 중간에 관객들의 긴장을 잠시 풀어놓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실미도> <아는 여자>의 정재영이 동진 딸의 화장 장면에서 유족으로 잠시 등장하고, 푸근하고 부담 없는 진행으로 사랑받고 있는 이금희 아나운서가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온다.
사상 최강의 카메오는 바로 이 영화!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 - 톰 크루즈, 기네스 팰트로, 케빈 스페이시, 대니 드 비토, 스티븐 스필버그, 퀸시 존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존 트라볼타
이 영화의 오프닝은 오스틴 파워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속 영화’다. 이 영화 속 영화의 출연진은 오히려 영화 본편을 압도할 정도의 호화 캐스팅인데, 오스틴 파워를 연기하는 톰 크루즈가 번쩍거리는 미소를 머금고 등장하여 마주선 여성 첩보원 기네스 팰트로를 보고 “Yeah, baby!”를 외치면, 갑자기 닥터 이블 케빈 스페이시가 나타나고, 그 옆에서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미니미(대니 드 비토)가 나타나는 식이다.
이렇게 얼빠질 정도로 화려한 카메오 군단이 지나가고 나면, 촬영장에서 진짜 오스틴에게 ‘오프닝 어때?’ 라고 묻는 감독이 다름 아닌 스티븐 스필버그다. 이외에도 타이틀 크레딧에서 음악감독으로 퀸시 존스가, 오스틴에게 늘 당하고 마는 여성 로봇 역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나와 그와 함께 댄스 배틀을 펼치며, 후반부에 다시 한 번 등장하는 영화 속 영화에서는 존 트라볼타가 골드멤버로 등장한다. 한 영화 속에서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호화로운 카메오의 경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