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김소영 교수가 만난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
2005-07-21
사진 : 김태형 (한겨레 기자)
정리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왜 친절한 금자씨냐고?” “죄의식 자청한 ‘민감한 사람’ 얘기하고 싶었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올드보이>의 흥행에 더해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으로 박찬욱(42) 감독은 명실공히 한국 영화의 간판 감독이 됐다. 그 스스로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말하는 <친절한 금자씨>의 개봉(29일)을 앞두고 영화평론가인 김소영(43)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가 박 감독을 인터뷰했다.(둘은 서강대 영화 동아리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분노, 죄의식 등 박 감독의 영화에 반복돼 등장하는 모티브의 개인적인 연원을 묻는 질문에서 박 감독의 대답은 비껴가는 듯 했지만 <친절한 금자씨>의 음악 사용과 동화적 표현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소영=박찬욱 감독은 지금 한국 영화계의 가장 ‘핫’한 위치에 있는 감독 중 한명이다. 이런 위치가 영화를 만들 때나 관객을 의식할 때 어떤 영향을 끼치지 않는가.

박찬욱=전혀 안 끼친다. 나는 영화 한편 만드는 데 시간도, 돈도 꽤 드는 타입이기 때문에 정말 내면의 절실한 욕구나 동기가 없다면 못 버틸 정도로 지친다. 흥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늘 생각해온 것이라 내면화돼서 특별히 더 의도할 필요도 없다.

=영화를 만들게 하는 힘을 절실함, 또는 맺힌 것이라고 표현한다면 박 감독 작품에는 이런 맥락에서 꾸준히 표현되는 것들이 있을 거다. 비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김기덕 감독 경우 누가 봐도 그의 내면에 맺힌 것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는데 박감독에게 이런 것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이야기한다면 뭘까?

=음…(한참, 고민). 내 영화에는 어떤 어리석은 짓,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사람들은 거기서 원래의 순결한 상태로 돌아가려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사용된 용어로 하자면 영혼의 구원을 얻으려 하고 그것이 대개는 좌절되지만 어쨌든 노력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대답이 된 건가?

=박 감독의 인생에서 유년의 트라우마라거나 또는 첫번째 실수라고 기억하는 것들 중에 현재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치거나 모티브로 작동하는 것이 있나.

=개인적 체험이라는 게 너무 범위가 좁고 평범하기 때문에 거기서 나올 만한 건 별로 없다. 떠올릴 수 있는 거라야 가톨릭 가정에서의 성장 정도? 그렇지만 한국 가톨릭이라는 게 유럽처럼 죄의식을 강요한다거나 하는 보수적 전통도 강하지 않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친절한 금자씨>는 금자씨가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도 속죄하고 싶어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강조하면서 매우 섬세한 윤리적 부분을 건드린다.

=금자는 고지식하고 유치한 면이 있지만 뻔뻔한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각본 초기 단계에서 논란이 많았다. 명색이 복수극이라면 아이가 죽는다거나 15년 동안 감금됐다거나 하는 더 강력한 동기가 부여돼야 하는데 금자에게는 그만큼 강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절한 금자씨>는 바로 거기서 출발한 이야기다. 꼭 자기가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되는 죄의식을 자청한 사람, 남보다 그런 문제에 민감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전작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데 <복수는 나의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주저함이나 가차없이 탁 베면서 끝이 났고, 그게 평론가들이 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거기에 비하면 <친절한 금자씨>의 결말은 무자비하지 않다. 그런 부분들이 비평적으로는 좀 의아하다.

=금자는 잘못된 방식으로 속죄를 시도해서 스스로 후회도 하고 죽은 아이의 용서를 얻지도 못했지만 그 노력이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고 실속도 없지만 애쓰는 것에 대해서 예쁘게 봐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결말이 결국 평화를 되찾았다거나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마지막에서 딸과 끌어안는 게 감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 생각으로는 안정된 결말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능하는 소품이 흰 두부와 흰 케익이다. 흰 두부가 우리사회의 전통적 가치체계를 상징한다면 금자가 직접 만들어서 먹는 흰 케익은 서구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한국사회는 두 가치체계가 혼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속죄나 구원같은 영화의 질문들은 내재된 절실함에서 나왔다기 보다 외부로부터 부가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 만드는 입장에서 이게 어디서 왔던 간에 실제로 한국에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라는 거다. 누구든지 살면서 실수하고 그러고 나서 괴로워하고 되돌리고 싶어하고, 그건 현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도사같은 인물을 통해서 기독교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제제기 자체가 기독교적인 사유의 회로 안에서 이뤄지고 해결과정도 그걸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박 감독만의 독특한 시각과 정교함으로 한국의 현실을 탁월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를테면 <복수는 나의 것>에서 아나키즘을 통한 해방적 결론에 비하면 폐쇄회로 안에 갖혀있는 것같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웃음). 특정 종교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관념이 어디에서 왔든지 지금 한국에서 매우 현실적인 문제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복수 3부작이라는 맥락에서 볼때 1편 <복수는 나의 것>이나 2편 <올드보이>에서는 계급이 중요한 문제였고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젠더 문제가 결합한다. 구체적으로 착취당한 여자의 되갚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두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같다. 1,2편에서는 없었던 약간의 위안이나 희망을 주고 캐릭터, 사운드 사용 방식 등을 통해 여성성에 대한 공감이나 친밀함을 보여주는 게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작들이 끝까지 밀고갔던 것과 달리 여성성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을 것같다.

단편 <심판> 만들며 영화인생 극적으로 바뀌어

=여성 주인공을 앞세우면 결국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거라 생각했다(웃음). 내가 여성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여성주의적으로 가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바랬던 건 능동적, 독립적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홀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정도였다.

=금자가 두부를 던지고 꽃잎 모양의 아름다운 케익을 만드는 모습은 박 감독이 웰메이드를 지향하는 태도와 친연성이 있는 것같다.

=웰메이드라는 표현은 좀 거북하다. 내 영화는 툭툭 튀는 구석이 많고 거칠기도 하고 엉뚱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내가 알아왔던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멀어도 많이 멀다. 윌리엄 와일러 같은 감독이 정말 흠잡을 데 없고 보편적인 웰메이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내 영화에는 그런 보편성도 없고.

=옳은 지적이다. 박찬욱 감독에게 웰메이드라는 건 프로덕션 세트 디자인 완성도 같은 데 한정해서 생각해야 할 것같다. 오히려 두부와 웰메이드처럼 보이는 케익 사이에서의 주저함에서 박 감독 영화의 힘이 있는 것 같다. <공동경비구역JSA> 때부터 외부로부터 감독을 보는 인지도가 바뀌었는데 실제로 본인에게도 그 영화 만들면서 또는 만든 뒤에 변화가 생겼나.

=영화 경력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공동경비구역JSA> 직전에 만들었던 단편 <심판> 때였다. 일단은 단편이기 때문에 무보수로 배우를 기용하는 상황이었고 배우들이 기주봉씨같은 연극계 고참이었다. 보수도 없이 형님들 모시고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맘대로 시키기보다는 의견을 듣고 설득하면서 촬영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배우들과의 의사소통이 뭔지, 이 소통이 영화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또 배우들이 얼마나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들인지도 알게 됐다. 서서히가 아니라 극적으로 바뀌었고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였다.

=박 감독과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대학 때 함께 동아리에서 영화 공부했던 게 생각난다. 그때 박 감독은 바바리 코트를 자주 입었고 아웃사이더처럼 주변에 개입하지 않고 눈에 띄려고 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같이 영화 공부하던 사람들보다 수줍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많이 주저했다. 리더십이나 적극성, 저돌성이 요구되고 때로는 일전불사하는 자세로(웃음), 터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겁을 많이 먹었다. 막상 들어와 보니까 진짜 그렇더라(웃음). 그래서 적응하기 참 힘들었다. 일하면서 조금씩 내 성격도 변했다. 지금도 터프하지는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잘 달래고 설득하고 칭찬해주고 그러면서 끌어간다.

=다음 작품은 뭔가.

=씨제이엔터테인먼트의 에이치디(HD) 프로젝트 중 한 작품인데 지금까지 내 영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영화다. 그동안의 영화가 넓은 의미의 스릴러였다면 이번 작품은 보통 드라마다. 자기가 사이보그라는 망상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춘기 소녀가 환자들과 의사들을 만나고 사랑에도 빠지면서 자신의 병을 인식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판타지적 요소가 매우 강하다.

=<친절한 금자씨>에도 판타지나 그로테스크한 구전동화적 요소가 곳곳에 드러난다.

=맞다. 한참 공부하던 80년대 초중반을 지배했던 담론이나 당시의 리얼리즘 논의가 나한테는 언제나 좀 답답했다. 그렇지만 지배당했던 의식이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친절한 금자씨>처럼 만들 생각을 못했던 건데 차츰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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