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할리우드작가들의 뒷조사(?)에 매달리다보니 별의별 화상들을 다 만난다. 개중에는 평생 쓴 작품의 필모그래피가 무려 200개를 넘어서는 괴물도 있다. 이쯤되면 기업이다. 작가의 이름이란 그저 회사의 상표일 뿐이고, 그의 이름으로 된 시나리오들은 모두 ‘포드시스템’을 도입한 공동창작의 산물인 것이다. 그게 시나리오의 자본주의적 발전단계에서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몰라도 글쎄…, 왠지 개운치가 않다. 평생 단 일곱편의 시나리오를 썼으되, 그 모두에서 심오한 통찰과 격조 높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로버트 볼트의 존재는 그래서 오히려 이채롭다.
로버트 볼트는 영국 맨체스터 지방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겟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맨체스터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마을의 고등학교에서 역사선생으로 살아가면서 틈틈이 라디오대본들을 쓰기 시작한다. 그가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선 것은 그의 희곡 <꽃피는 체리>(1958)가 런던무대에서 크게 흥행하면서부터. 그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계절의 사나이>(1960)가 바다 건너 뉴욕에서 비평가상을 수상하면서 볼트는 역사물에 가장 정통한 지적인 극작가로 부동의 지위를 굳힌다.
영화계에서 그의 재능에 눈독을 들인 최초의 인물은 역시 같은 영국 출신인 데이비드 린. 이후 린과 볼트는 ‘환상의 콤비’를 이루어 1960년대의 세계영화계를 뒤흔든 대작 영화들을 속속 만들어낸다. 그에 대한 린의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찍을 당시 걸핏하면 영국에 남아 있던 볼트를 촬영지인 모로코의 사막까지 공수해와 며칠밤씩 끝없는 토론에 매달리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볼트의 작품세계는 뚜렷하다. 그는 언제나 역사의 격랑 속에 휘말려들어가 부침을 거듭하는 개인의 운명에 주목한다. 열강에 의하여 난도질을 당하던 아라비아의 사막을 사랑한 사나이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 러시아혁명을 이해할 수 없었던 순애보의 의사 지바고(<닥터 지바고>), 헨리 8세의 전횡을 묵인할 수 없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유토피아>의 작가 토머스 모어(<사계절의 사나이>), 잉글랜드 치하의 아일랜드에서 점령군 장교를 사랑한 철없는 유부녀 로지 라이언(<라이언의 딸>)…. 볼트의 손끝에서 살아난 이 ‘문제적 개인’들은 정사(正史)가 기록하지 못하는 한 개인의 실존적 고통을 호소하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동시에 오히려 이러한 개인들을 통해 역사에 대한 깊은 시선을 획득하게 되니 볼트가 제공하는 예술적 아이러니의 빛이 참으로 휘황하다.
그러나 <라이언의 딸>을 끝으로 볼트와 린의 협업은 중단된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무려 1년 동안이나 장기상영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냉담한 반응을 얻어, 이에 낙담한 린이 기나긴 침묵과 칩거에 들어간 것이다. 파트너를 잃은 볼트는 다음 작품 <레이디 캐롤린 램>을 직접 연출하지만 역시 쓴잔을 마시고 다시는 메가폰을 잡지 않았다. 12년 만의 재기작 <바운티호>는 같은 사건을 놓고 만들어진 숱한 영화들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힌다. 앤서니 홉킨스와 멜 깁슨의 연기도 좋고 원로인 로렌스 올리비에와 신예인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단역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도 짭짤하다. <미션>은 노대가에 이른 볼트의 마지막 작품답게 스케일이 크고 장엄하다. 제국주의의 격랑 속에서 신앙과 우정을 지키려 쓰러져간 가브리엘 신부와 멘도자의 모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볼트는 <닥터 지바고>와 <사계절의 사나이>로 2년 연속 아카데미 각본(색)상을 수상하는 진귀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작품세계를 바꾸는 얍삽한 작가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평생토록 일관된 작품세계를 추구한 ‘사계절의 사나이’였다. 풀빵 찍어내듯 어슷비슷한 기획영화들만이 판을 치는 이즈음 로버트 볼트처럼 기품있던 옛 어른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