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저먼이 죽은 게 언제인데, <주빌리>가 나온 게 언제인데, 늦어도 한참 늦은 방문이다. 저먼의 첫 작품 <세바스찬>이 먼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게이 시네마였다면 두 번째 작품 <주빌리>는 영국의 과거, 현대, 미래를 관통하는 펑크무비다. 대영제국의 영화를 상징하는 엘리자베스 1세가 찾아온 현대의 영국. 그녀의 분신인 보드가 갱의 리더로 활약하며, 범죄와 폐허로 얼룩진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곳은 묵시록에 다름 아니다. 천사와 여왕과 무정부주의자가 조우하고, 시대극과 실험영화, 판타지가 뒤섞인 <주빌리>는 감독, 화가, 정원사를 넘나든 저먼의 정체처럼 혼란스럽다.
<주빌리>는 <대영제국의 몰락> 등에서 반복된 저먼식 영국 탐구의 시작이다. 그것은 현대에 대한 해석이었을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근심이었을까? 대답은 영화의 후반에 나온다. 방화광 매드가 ‘미래가 없다’고 선언하자 여왕은 슬퍼한다. 그리고 신하와 함께 먼길을 떠난다. 또한 나치 성향의 자본가와 결탁한 극중 펑크족과 실제로 펑크를 버리고 뉴웨이브로 돌아서 성공을 거둔 애덤 앤트는 반동 세력이 판친 1980년대를 예언했다. 조지 루카스가 우주 제국의 파괴를 그린 바로 그해, 한 영국 작가가 정반대의 노선으로 실존했던 제국의 몰락을 응시했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다. <주빌리> DVD가 심의 반려 끝에 마침내 온전한 형태로 소개된다. 결코 웰메이드 영화가 아니고 함부로 권하기도 힘든 영화다. 안타깝지만 이 DVD는 한국시장에서 이단아 역할을 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