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장마전선이 남해안에 드리웠던 7월4일, <소년, 천국에 가다> 제주도 촬영현장을 방문키로 했던 취재진은 3시간 넘게 바람맞았다. 촬영이 예정보다 빨리 이뤄진다고 해서 점심을 거르기로 하고 일단 성산 일출봉행(行). 그러나 제작진은 도중 촬영을 마쳤다고 연락을 취해왔고, 취재진은 다시 머리를 돌려 정방동굴 근처 바닷가로 향했지만, 이번엔 빗방울이 굵어지는 바람에 버스 안에서 대기 상태를 취해야 했다. 추격전 끝에 여행객이 즐겨 찾는 승마장을 거쳐 산기슭에 펼쳐진 푸른 초원에 닿았을 무렵엔 이미 느지막한 오후였다.
“잘 부탁한다.” 초등학교 때 민속촌에서 한번 타본 경험이 전부라지만, 말의 목덜미를 매만지다 훌쩍 올라타는 박해일의 폼이 초보 같진 않다. “확실히 운동신경이 있어”라고 윤태용 감독이 칭찬할 만도 하다. 승마 경력이 꽤 있는데다 <태조 왕건>에서도 말타는 연기를 선보였던 염정아는 어떨까. 검은 승마 모자를 쓴 박해일을 보자마자 “귀여워, 우리 해일이 좀 봐봐”라면서 모습을 드러낸 염정아는 “(내가 탈 말은) 왜 이렇게 부들부들 떨어? 상태가 괜찮은 거야?”라며 영 못마땅한 눈치를 보인다. 간만에 타니 “좀 무섭다”고 엄살을 떨면서도 긴 다리를 휘둘러 안장에 몸을 싣는 걸 본 조련사의 품평. “역시 확실하네.”
이날 제작진의 촬영 분량은 네모(박해일)와 부자(염정아)의 신혼여행 여정을 뒤쫓는 장면들. “하루에 1년씩 늙어가는” 병(?)에 걸린 네모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달콤함을 즐기는 부자의 짧기만 한 신혼여행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미끄럼틀 타듯이 촬영이 주르륵 진행된다. 전체 일정의 75% 이상을 소화하는 동안 자연스레 서로의 호흡을 몸으로 느낄 만큼 신뢰가 쌓여서일지도 모른다. 뒤를 가끔씩 돌아보며 애교를 부리는 염정아와 일부러 뒤뚱거리는 박해일에게 윤태용 감독은 별다른 주문없이 “서부영화의 카우보이처럼 즐겨! 애드리브도 하고!”라는 추임새만 넣고 있다. 사람 나이로 쉰이 다 된 두 마리 말들만이 반항을 일삼을 뿐 제작진은 가느다란 빗줄기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다.
<소년, 천국에 가다>는 몸이 훌쩍 커버린 <빅>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미혼모 엄마와 달랑 둘이 사는 장난기 많지만 어른스런 13살 소년 네모는 “어서 빨리 커서 미혼모와 결혼하겠다”는 것이 꿈이다.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으로 홀로 남게 된 네모는 서른도 되지 않은 몸으로 아들을 홀로 키우는 만화방 여주인 부자에게 끌리게 되고, 그의 아들 기철을 불이 난 극장에서 구하려다 정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네모는 33살의 남자가 되어 있고, 자신의 하루가 남들의 1년이라는 사실을 또한 깨닫게 된다. 윤태용 감독은 1980년대 경상도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로맨틱판타지를 두고 “순수와 노스탤지어가 가득한 슬로 월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과감한 원색을 즐겨 쓰는 미술과 의상은 복고적인 분위기를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색감을 뽑아내기 위해서 CG를 적지 않게 쓸 계획이다. 가을 개봉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