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성공한 소녀 모델의 초급 배우 수업, <신 시티>의 데본 아오키
2005-07-25
글 : 박혜명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외모다. 아시아 소녀의 새침하고 뾰로통한 얼굴과 남미의 미녀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다갈색 피부, 그 와중에 비(非)백인들의 불가침 영역인 블론드가 흘러내리는 육체. 뿌리도 동종도 없는 것 같은 데본 아오키는 그 포스트모던한 매력 하나로 열여섯살의 나이에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뮤즈가 됐다. (단신으로 유명한) 케이트 모스보다 1인치 더 작은 키에 희한한 얼굴을 한 여자애가 라거펠트의 샤넬 쿠튀르 캠페인 간판이 되자, 개성과 변화와 진보를 목숨처럼 여기는 패션계가 뒤집어졌다.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나오미 캠벨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아오키와 계약을 맺었다(이 일로 나오미 캠벨은 한동안 도나텔라 베르사체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하고 다녔다). 포스트펑크적인 쇼로 언제나 충격을 던지기 좋아하는 지방시의 수석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도 아오키를 놓치지 않았다. 펜디, 발렌시아가, 장 폴 고티에의 무대가 그녀를 불렀고, 영국쪽 에이전시인 스톰모델매니지먼트사에서 1급 개런티를 받는 스타가 됐다. 모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데본 아오키는 스무살 이전에 이뤘다.

성인식도 치르기 전에 세계 톱모델이자 갑부가 되어버린 소녀는 2003년 젊은 관객을 노린 상업영화 <패스트 앤 퓨리어스2>의 조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대사는 많지 않고, 멋진 차 곁에 서 있으면 근사한 그림이 만들어지는 여자 레이서다. 열세살 때 패션계와 친분이 깊은 대모로부터 케이트 모스를 소개받고, 클럽에서 캘빈 클라인의 새 모델 캐스팅 디렉터에게 발탁되며 성공한 모델 치고 조촐한 신고식이다. 스파이가 된 네 여고생의 액션코미디 <D.E.B.S>(2004)에서 그녀는 말하기보다 담배 꼬나물기가 버릇인 반항기 많은 아이로 나왔다. 세 번째 영화 <씬 시티>의 경우 (국적은 중요치 않고 그저) 아시아 계통의 킬러 미호는 말을 아예 안 한다. 옥상에서 지상으로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으며 양손에 든 장검으로 상대방을 고등어 토막내듯 잘라버리는 무서운 여자일 뿐이다. 데본 아오키는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하는 이미지 덩어리 그 자체다. 영화가 요구하는 것도 아직 그뿐이라는 걸, 30초짜리 캣워크의 이미지로 승부하는 패션계에서 성공한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녀의 진짜 꿈은, 나이트클럽 경영을 거쳐 일본식 레스토랑으로 성공한 사업가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다. “30살까지 모델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은 없어요.” 배우의 자질이 검증되지 않았으므로 이 길을 언제까지 갈지는 본인도 알 수 없다. 촬영을 하면서 차 모는 법을, 총 쏘는 법을,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없는 배경을 상상하는 법을 배웠다. 아오키는 일단, 배우 수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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