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곳에서는 이주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7월 초 발칸반도를 다녀왔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스위스 제네바를 거쳐,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 코소보의 프리슈티나, 마케도니아의 스코페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대한민국 여권 하나면 무사통과였고, 더위만이 유일한 투정거리였다(마침 한국언론재단에서 지원하는 ‘스터디 투어’(Sturdy tour)의 주제는 난민과 이주였다. 10명이 일정을 함께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합법으로 내려간 그 길은 누군가에게는 불법으로 마음 졸이며 거슬러오른 길이었을 게다. <인 디스 월드>의 자말(자말 우딘 토라비)과 사촌형 에나야트(에나야툴라 자무디)처럼. <인 디스 월드>는 12살 소년 자말이 사촌형 에나야트와 함께 파키스탄에서 런던까지 6400㎞를 (주로) 육로로 건너가는 이야기다. 우여곡절은 당연지사. 파키스탄 국경은 뇌물을 주고 건너고, 터키 국경은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넘는다. 이란 국경에서는 적발당해 추방당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걸어서 사막을 건너고 국경을 넘는다. 터키에서는 인신매매를 당해 컨테이너 속에 갇혀 이탈리아로 간다. 에나야트가 배 안의 컨테이너에 갇힌 채 질식해 숨졌을 아드리아해를 나는 비행기 안에서 졸며 건너고 있었다.
발칸에는 숱한 자말과 에나야트들이 살고 있었다. 알바니아는 국민 350만명 중 이주노동을 떠난 사람이 100만명이고, 코소보 지역은 250만명의 인구에 100만명이 해외에서 이주노동자로 살고 있다. 이탈리아와 알바니아 사이의 아드리아해는 비행기로 1시간 남짓이면 건너지만, 이탈리아와 알바니아의 국민소득 격차는 10배가 넘는다. 당연히 발칸의 청년들에게 유럽은 희망의 땅이다. 하지만 비자를 얻기란 어렵다. 이주가 운명이라면, 불법은 숙명이다. “자기 땅에서 사는 일이 행복하다”는 충고는 주제 넘는 짓이다. 그들은 자말처럼 어린 나이에, 에나야트처럼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떠난다. 발칸은 아프가니스탄처럼 90년대 내내 전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보스니아에서는 세르비아인과 보스니아인,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 중에는 수십만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전쟁 전후에는 수백만명의 이주자가 생겼다. 난민과 이주의 땅, 자말의 아프간과 벤의 발칸은 그렇게 닮았다.
한국과도 멀지 않은 이야기
벤은 알바니아의 티라나에서 만난 20대 청년이다. 그는 우리가 묵은 호텔의 직원이었다. 벤은 유창한 영어로 우리의 길잡이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8년 동안 불법 혹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살았다고 했다. 13살에 처음으로 국경을 넘었단다. 그리스의 농장에서 일하다가 이탈리아로 밀입국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자말처럼 난민신청을 했지만, 자말처럼 난민신청을 거부당했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to be honesty”(정직하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항상 정직을 의심받는 불법의 신분으로, 언제나 정직을 강변해야 했던 운명이 말버릇에 녹아 있었다. 자말에게처럼, 벤에게도 영어는 절박한 생존의 도구였을 것이다. 그는 눈치가 십단이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을 하면 금방 알아차렸다. 어쩌면 영악한 사람만이 유능한 이주자가 되는지도 모른다. 영악해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 디스 월드>에서도 영어는 권력이 되고, 눈치는 무기가 된다. 서툰 영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12살의 자말 앞에서 영어로는 입도 벙긋 못하는 에나야트는 나이가 많아도 어린 양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난민 고아로 자라서 눈치가 10단인 자말은 넉넉한 부모 밑에서 곱게 자란 에나야트보다 세상물정에 더 밝다. 이탈리아로 오는 컨테이너 안에서 에나야트를 잃고도 자말은 갈 길을 멈추지 않는다. 웬만하면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에서 멈췄으면 싶지만, 돈을 훔치고 밀입국을 거듭하면서 기어이 런던에 다다른다. 마침내 런던에 도착한 자말은 고향에 전화를 한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딘가(인 디스 월드)에서 형을 잃었다고 전한다.
자말은 어디에나 있다. 전쟁은 난민을 낳고, 난민은 밀입국을 시도하고, 밀입국자는 인신매매당하기 일쑤다. ‘인 디스 월드’에는 현재 1450만명의 난민이 있고, 지난 30여년 사이 1억여명이 이주를 했다. 물론, 그중 상당수는 미등록 이주자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벤처럼 운좋게 밀입국에 성공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에나야트처럼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인 디스 월드>의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은 2000년 6월 58명의 중국 난민이 영국 밀입국 과정에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질식사한 사건에 충격을 받아 <인 디스 월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런 비극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더 가까운 과거인 2001년 10월 서해안을 통해 밀입국하던 중국인과 중국동포 25명이 배 안에서 질식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이토록 가까운 ‘인 디스 월드’에 살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인 디스 월드>를 보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