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칼에 맞는 걸 상상해 본 적 있어? 목에서 피는 계속 올라오고, 아무리 고통을 참아봐야 소용없지. 이제 곧 죽을 것을 아니까 말이야. 아예 죽으면 좋으련만 죽지도 않아. 넌 그 때 무슨 생각 할 거야?"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야 네가 느끼는 굴욕감이 더 커질 것이야."
이런 살벌하기 짝이 없는 대사들을 빨간 장미를 들고 미소를 머금은 채 날리는 등장인물이라면 분명 악역일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피와 살인을 이 세상의 그 어떤 쾌락보다도 귀중하게 여기는 자라면 악역 중에서도 거의 최악에 속하지 않을까.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영화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에서는 바로 그 '최악의 악당'이 등장한다. 이름하여 모가미 비조마루. 우리나라에는 <밝은 미래> <피와 뼈> 등으로 잘 알려진 젊은 배우 오다기리 조가 연기했다.
상황은 이렇다. 주인공 아즈미와 함께 자객으로 길러진 소년 휴가는 우연히 만난 곡예단의 소녀 야에에게 반해 그와 함께 자객을 그만 두고 떠나려 한다. 그러나 적이 불러낸 비조마루와 닌자 토비자루가 그들의 앞을 막아선다.
야에를 지키기 위해 비조마루에게 맞선 휴가가 결국 살해당하고 마는 장면은 비조마루의 극악한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다. 대사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사람의 처절함이야말로 그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 사악한 웃음을 머금고 휴가를 베어버리는 비조마루의 모습은 광기 넘치는 악역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런 악당 중의 악당을 그냥 놔 두냐고? 걱정 안 해도 된다. 클라이맥스에서 우리의 주인공 아즈미에게 최악의 악당에 걸맞는 최후를 맞게 되니까. 공평하지 않은 세상과는 달리, 영화는 항상 공평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