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내 심장을 멎게 한 <노팅 힐> 의 안나스콧, 줄리아 로버츠
2005-07-28
그녀를 다시 만나려 오늘도 극장앞 기웃거린다
<노팅 힐>의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

단언컨대, 나는 줄리아 로버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 케이블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떠돌다가 문득 걸리기라도 하면 결국 끝까지 보고야 마는 그 재밌는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도 나는 줄리아 로버츠만은 미스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멀대처럼 큰 키에 인천공항만큼 큰 입을 소유한 여자는 나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는 1970년대의 다이안 키튼이나 80년대의 피비 케이츠, 혹은 90년대의 맥 라이언처럼 작고 귀여운 느낌의, 고양이 같은 여자가 좋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단 한 편의 영화, 그것도 단 하나의 장면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영화는 <노팅 힐>이고, 그 장면은 후반부에 그녀가 휴 그랜트의 서점에서 마지막으로 사랑을 확인할 때다. 스크린을 보면서 이야기해야겠으나 불가능하므로 지면으로나마 한번 재현해보자.

서점에 찾아온 그녀. 하늘색 카디건에 파란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상처를 받은 휴 그랜트에게 사과하며 조분조분 상황을 설명한다. “이제 나는 당신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이라며 농담하는 그녀, 하지만 소심한 휴 그랜트는 결국 그 사랑을 포기한다. 그 거절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그를 멍하니 쳐다보는 그녀. 잠시 입술을 꽉 다물고 있더니 이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녀의 눈은 툭 건드리면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지만, 그녀의 굵은 선은 그녀를 단지 ‘연약한 여자’로 놔두지 않는다. 금세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 “훌륭한 결정이에요. 하지만 잊지 말아요. 지금의 나는 단지 한 남자 앞에 서서 사랑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라는 걸.” 그러곤 그녀는 뒤돌아선다.

나는 스크린 속에서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더니 이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휴 그랜트에게 ‘이 얼간아, 그녀를 잡아!’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처럼 내가 영화 속 여배우를 보고 가슴이 뛴 건 <천녀유혼>의 왕쭈셴(왕조현)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나는 단숨에 그녀에게 반하게 되었다.

김양수/월간 <페이퍼> 기자, 만화가

이런 걸 사랑이라 말하면 우습지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한 순간 반하게 되는 것. 누군가에게 반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품이나 능력 등을 하나하나 따진 후에 결정하는 게 아니듯,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녀의 전작이나 <할리우드 뉴스 101> 같은 가십 프로그램에 나오는 그녀의 사생활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저 단 한 장면, <노팅 힐>의 마지막 장면 속에서의 모습으로 인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후 다른 작품에서의 그녀도 꾸준히 사랑해왔다고 말하긴 힘들다. 예를 들어 <오션스 일레븐>의 줄리아 로버츠, 혹은 <에린 브로코비치>의 그녀를 좋아하느냐면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오로지 <노팅 힐>에서의 극중 배역인 ‘안나 스콧’뿐인 것 같다.

더 이상 그녀에 대해 구구절절 할 말이 없다. 나는 <노팅 힐> 이전의 그녀의 모습, 혹은 그 이후의 그녀에 대해 온통 부정하고 있으니까. 마치 17살 여름방학 때 동네 도서관에서 첫눈에 반했으나 두 번 다시 보지 못한 어여쁜 여학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엔 서론도, 본론도 없다. 그저 <노팅 힐>에서와 같은 그녀의 모습을 다른 작품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했던 옛 연인을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대감으로 오늘도 줄리아 로버츠의 새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앞을 기웃거린다.

김양수/월간 <페이퍼> 기자,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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