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7월31일(일) 밤 11시45분
공포영화특선 제2탄으로 방영되는 영화는 장일호 감독의 <흑발>이다. 제목에서도 대강 짐작이 가듯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검고 긴 머리를 씻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타이틀백으로 시작한 영화는 첫 장면부터 피를 토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녀의 한이 영화의 모티브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공포영화를 기대하고 보는 관객에겐 좀 답답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공포영화적 요소는 영화의 중반 이후에서야 펼쳐지기 때문이다. 목 없는 귀신, 인간으로 둔갑한 귀신, 일그러진 얼굴로 원한을 불사르는 귀신, 목을 조이고 온몸을 휘감는 한 맺힌 여자 귀신의 검은 머리카락, 360도 목이 돌아가는 귀신 등 귀신이 종합선물세트로 등장한다. 영화의 절반 이상은 무협영화, 그중에서도 검술영화의 요소를 배치해두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엔 귀신과 칼싸움을 하는 상황까지 연출된다. 그런 면에서 꽤 이색적이다 하겠다.
당시는 한홍합작이 꽤 많이 시도되던 때였고, 이 작품 역시 한국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 배우와 홍콩 배우가 출연한 합작영화이다. 그런데 영화의 배경이나 스타일은 중국식으로 설정되어 있다. 출연자들이 입고 나오는 옷이나 머리스타일이 모두 중국식이며, 중국식 유곽의 모습 등은 일종의 무국적 혹은 키치적 스타일을 보여준다. 당시는 <정무문>이나 <용쟁호투> 같은 이소룡의 권격 영화가 한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리라. 또한 다소 과도한 퀵줌이나 퀵팬 등 당시 유행했던 카메라 워킹을 빈번히 사용하고, 맥락없이 자주 등장하는 정사장면 등은 1970년대 한국영화의 분위기를 짐작게 하는 장면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