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이야기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비치>는 정작 대니 보일 감독 자신의 실낙원 같다. 이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배낭족 청년은 천혜의 낙원을 발견하지만 낙원은 이미 지옥이었고 곧 참혹한 종말을 맞는다. <쉘로우 그레이브>와 <트레인스포팅> 등 단 두편으로 단숨에 영국이 낳은 세계적 스타 감독이 돼버린 대니 보일이 할리우드의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 할리우드는 그에게 어쩌면 기회와 자본의 인공낙원처럼 보였을는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영국에서의 100배쯤 되는 제작비에다 섬 하나를 세트처럼 마구 뜯어고쳐가며 사용했다. 하지만 할리우드와의 거래에서 그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아 보인다. 디카프리오라는 특급 스타와 화려무비한 스케일은 대니 보일 특유의 무자비한 냉소나 희망없음의 절규와 뒤섞이면서 계통도 족보도 없는 이상한 사생아를 출산했다. 글쎄, 대니 보일의 세계라는 것도 그의 영화제목처럼 얕게 덮어놓은 무덤 같은 것이었을까. 그보다 10년 먼저 할리우드에 스카우트돼온 그의 선배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보다 그는 더 화려하게 입성한 만큼 더 낙폭이 큰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고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 두뇌유출이 진행됐다. 아메리칸 드림만큼이나 할리우드 드림도 강력한 것이었다.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쑥밭이 되고 영화산업은 찌그러들고 할리우드에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번창하던 1920∼30년대부터 할리우드는 세계의 영화인력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제작자에서 감독, 배우까지. 미국과 문화적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한 유럽이 두뇌유출의 가장 큰 피해지역이었다. 그나마 영화 전통과 산업이 비교적 건강해 작가가 숨쉴 만했던 프랑스 정도가 예외였을 것이다. 90년대에는 홍콩의 중국반환을 전후해서 홍콩영화인들의 집단적인 엑소더스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홍콩영화인들이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는 것은 홍콩영화의 상업적 생리가 할리우드와 서로 통하는 바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뉴 저먼 시네마의 총아 빔 벤더스가 한때 코폴라의 제안으로 할리우드에 건너갔다가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4년 동안 <해밋>이라는 영화 한편 붙들고 악전고투했던 유명한 실패담도 있거니와, 거대예산과 메이저시스템과 스타와 세계배급은 유혹적이긴 할 테지만 늘 결과가 좋은 건 아니다. 크고 많은 것이, 모든 경우의 절대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창작이나 예술이나 영혼과 관련된 사업에서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