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봇> 만든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크리스 웻지 감독
2005-07-29
글 : 김도훈
“36년간 애니메이션만 만들었다”

PDI 스튜디오(드림웍스)와 픽사의 3D애니메이션 양강시대에 블루스카이 스튜디오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라고 허풍을 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누구도 빛나는 앞날을 장담하지 못했던 자그마한 스튜디오는 2002년작 <아이스 에이지>의 성공을 시작으로, 올해 초 개봉한 <로봇>으로 북미에서만 1억3천만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며 단단한 입지를 다져두었다. 이제 3D 화면 속 파란 하늘 같은 미래를 보장받은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로봇>의 감독 크리스 웻지는 기술의 혁신보다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이야기 만들기’(Storytelling)가 3D애니메이션과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미래라고 확신하고 있다. 로봇세계의 조물주로부터 날아온 서면 인터뷰.

-<로봇>의 성공으로 이제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는 3대애니메이션 스튜디오라 불릴 만한 위치에 올랐다.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시작은 어땠으며 지금의 위치에 도달한 기분은 어떤가.

=블루스카이는 1987년에 아주 조그맣게 시작한 ‘작업실’이다.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제작 소프트웨어를 그냥 사다 쓸 수가 없어서 직접 제작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자본도 부족했고, 첫 2년간은 굉장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50명으로 규모가 늘어났고, 여러 곳에서 투자도 많이 받고 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자본이나 인력의 모자람 없이 모든 작업을 이루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로봇>은 눈이 부실 만큼 현란한 로봇시티를 무대로 하고 있다. 로봇마다 특징이 달라야 하므로 방대하고 피곤한 공정을 거쳤으리라 보이는데. 제작상 최고의 고충은 무엇이었나.

=질문한 대로 엄청난 양의 이야기나 캐릭터, 디자인 등의 디테일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우리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영화에 나오는 모든 것을 하나에서 열까지 새롭게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영화에 나오는 로봇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뿐만 아니라, 로봇들이 사는 도시는 어떻게 구성되고, 또 로봇들이 도시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 로봇들이 먹는 것, 입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디자인해야 했다. 장면마다 등장하는 각기 다른 로봇들, 그리고 건물들…. 정말 진땀나는 작업들투성이었다.

-지하세계와 지상세계의 대조에서는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가 연상되기도 한다. <로봇>을 구상하면서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있나.

=영감을 준 영화가 몇개 있다. <오즈의 마법사>가 큰 영향을 주었고, 각 캐릭터를 만드는 데 기존의 이야기들에서 이미지를 따왔다. ‘로드니’가 도시를 향해 떠나서 로봇시티에 도착하는 시퀀스는 <삼총사>의 ‘달타냥’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모두와 힘을 합쳐 ‘라챗’과 맞서는 장면은 <로빈후드>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자본가인 빅웰드가 슈퍼스타이자 영웅으로 그려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굉장히 미국적인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의 자본가는 보통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포함하지만, <로봇>에서의 빅웰드는 기본적으로 ‘일하는 사람’(발명가)이다. 그는 ‘라챗’한테 잠시 자신의 추진력과 꿈을 상실하지만 ‘로드니’에 의해 다시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와 ‘로드니’와 함께 싸운다. 자기만의 꿈을 갖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가 ‘로드니’임을 생각할 때, 역시 자신의 이상을 가지고 노력하는 ‘빅웰드’는 주인공의 영웅이자 (넓은 의미로서의) 동료인 것이다.

<로봇>

-<아이스 에이지>와는 달리 <로봇>에서는 이완 맥그리거, 할리 베리, 로빈 윌리엄스 등의 톱스타들에게서 목소리를 빌려왔다. 하지만 드림웍스와는 달리 스타를 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스타 목소리 캐스팅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난 관객이 유명한 스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이 출연했던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게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관객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영화 속 캐릭터의 목소리나 움직임, 연기를 느껴야 하고, 성우의 목소리는 그것을 돕는 것뿐이다. 다만 영화를 볼 수많은 관객을 위해서 좀더 익숙한 목소리가 필요할 때가 있고, 그래서 유명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명배우의 캐스팅을 마케팅에 앞세울 수 는 없다. 그건 관객이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한국 관객 역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Baby One More Time>이 나오는 장면에서 가장 크게 웃었다. 이건 누구 아이디어이며, 앞으로도 팝컬처를 영화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할 생각이 있나.

=그런 순간순간의 패러디 장면들은 영화제작의 거의 끝부분에서 이루어진다. 이야기 진행을 위한 모든 시퀀스들의 작업과 연결들이 해결되고 나서야 부분부분 양념 같은 장면을 넣는 것이다. 영화의 중간중간 동시대 대중문화(contemporary culture)들을 넣음으로써 시각적 배경이 50∼60년대이며 모든 등장인물이 로봇인 이 영화를 좀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관객이 한창 60년대 분위기에 몰입해 있는데 갑자기 동시대 코드들이 튀어나옴으로써 얻게 되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수용할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그랬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로봇>에서는 팝컬처의 수용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아이스 에이지>와 <로봇>의 시각적인 스타일은 픽사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과는 다르다. 우직하게 사실성을 고집하지도 않으며, 캐릭터 묘사나 동작이 전체적으로 가볍고 경쾌하다.

=스타일은 컨셉으로부터 정해진다. 만약 우리가 현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거기에 맞는 스타일을 어떻게 만들지 연구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스 에이지>는 2천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로봇>은 아마도 평행 우주(Parallel World)에 위치한 전혀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다음에 만들 영화는 <아이스 에이지2>이니 비슷한 스타일이 유지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로봇>에서 처음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빛 추적 묘사법’(Ray Tracing Renderer: 화면 속에 보여지는 주위 환경이 마치 실제의 공간에서 실제 재료와 실제의 빛을 가지고 있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주는 기법)은 어떤 효과를 낳는 것이며, 이처럼 3D애니메이션이 앞으로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미지의 영역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나.

=물론이다. 빛 추적 묘사법은 블루스카이에서 18년 넘게 개발한 것이다. 그것은 금속 재질의 물체에 환상적인 그림자와 하이라이트를 만들어주고, 보고 있는 것이 진짜라고 믿게끔 해준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표현하고자 하는 영화 속의 물체들이 매우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짜처럼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 흥미로운 긴장감이 생겨난다. 미래에는 렌더링(Rendering: 그림자나 색상, 농도의 변화 같은 3차원 질감을 넣음으로써 컴퓨터그래픽에 사실감을 추가하는 과정)과 CG가 점점 더 발전할 것이고, 이미 영화를 보면서 진짜인지 CG인지 구분하는 게 어려운 일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기술 자체의 혁신보다는 ‘이야기 만들기’(Storytelling)의 발전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3D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나. 혹시 2D애니메이션처럼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쇠락할 가능성은.

=3D애니메이션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관객의 관심을 계속해서 끌 수 있는 ‘이야기 만들기’ 능력에 달려 있다. 확실한 것은 지난 10년간과는 달리 관객이 기술적인 외양에만 현혹(Dazzle)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3D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만큼이나 색달라야(Unusual) 할 것이다. 물론 나도 2D애니메이션이 쇠락하는 것을 목도해왔다. 하지만 관객이 3D애니메이션에 감탄하는 동안에도,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감독들은 매력적인 2D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지 않나.

-드림웍스와 픽사라는 3D애니메이션 양강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그저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창조성과 상업성,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혼자서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 흥미롭지만 모든 관객이 좋아할 수 없는 그런 영화를 만들 것이다. 두 측면 사이의 적절한 지점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데… 아 이거 너무 끔찍한 대답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작은 규모를 유지할 계획이고, 18개월마다 영화 한편씩 지속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튼튼한(robust) 제작 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정답이겠다.

-<슈렉>의 앤드루 애덤슨 감독은 실사영화 <나니아 연대기>를 만들고 있다. 3D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특수효과가 추구하는 것이 점점 비슷해지는 시기인데, 당신도 실사영화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하지만 나는 평생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다. 12살에 애니메이션을 시작했고, 지금은 48살이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너무 재미있어서 아직 가보지 못한 다른 세계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만약 실사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3명 정도의 배우만이 출연하는 소규모 영화일 것이다. 조그만 장소를 배경으로 할 것이고,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영화가 될 것이다. 특수효과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제공 이십세기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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