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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유령이라 느껴본 적 있나요, <여고괴담4: 목소리>
2005-08-03
글 :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션 : 김연희
<여고괴담 4>가 전하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

나는 김소영의 “시스템의 억압을 다룬 전작들과 달리, 외부로부터 고립된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소녀들끼리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결국 반여성적이고 보수적이다”(<씨네21> 512호)는 평에 반대한다. 또한 듀나의 “시스템의 폭력에 의해 살해된 소녀의 슬픈 진혼곡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자신의 행위에 변명치 않는 뻔뻔한 작은 악마가 악역을 맡은 이 영화는 냉정하고 야비하다”(<씨네21> 510호)는 의견에도 반대한다. <여고괴담4>는 근본적으로 ‘호러’라기보다 ‘멜로’이며, 그것도 아주 슬픈 멜로이다. 시스템의 억압이 나오지 않는다고 비현실적이라 볼 수 없으며, 폐쇄적인 애증을 그린다고 해서 반여성적인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모든 성인멜로가 계급모순을 다루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모든 멜로는 반계급적인가?). 또한 귀신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 해서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귀신의 ‘고독’과 ‘참담한 자기인식’에 가슴이 시리다.

영화는 애초 귀신이 주인공임을 밝히고 시작한다. 귀신이 공포의 대상이거나, 주인공이 귀신이라는 사실을 반전으로 활용하는 여타의 공포물들과 달리, 영화는 귀신을 주체화시킨다. 즉 귀신에게 욕망을 부여함으로써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대체 귀신이란 어떤 존재이기에, 이다지도 슬플까?

귀신이라는 슬픈 존재

첫째, 몸을 잃은 자이다. 몸은 주체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마지막 매체이다. 영언은 몸을 잃음으로써 세계와의 물적 근거를 완전히 잃은 가장 외롭고 불안한 자가 된다. 교실을 배회하는 영언은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그 장소에 속하지 않은, 아무런 현실적 접점을 지니지 못하는 ‘부유하는 자’이다. 학교사회로부터 추방된 자가 아니라, 스스로 이미 속할 수 없다고 느끼는 ‘황량하고 고독한 정신상태’에 놓인 것이다. 세상엔 귀신이 아니더라도, 유령처럼 느끼는 주체들이 있다. 가령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동성애와 선생님과의 연애로 이미 또래 아이들과 다른 세계에 놓인 조숙한 소녀에게 교실 풍경은 아득하고 낯설다. 혹은 <4인용 식탁>에서 전생과 귀신을 보는 주인공에게 현실세계는 온전히 속할 수 없어 보인다. 영언은 엄마를 지겨워하며 떠나보냄으로써 마음속에서 이미 보편적 감정을 잃었다. 선생님과의 동성애적 관계에서 느낀 증오와 배신감으로 영혼의 일부가 파손된 그녀는 꼭 귀신이 아니더라도 더이상 ‘천진한’ 학교에 속할 수 없다.

둘째, 두번의 죽음 사이에 놓인 존재이다. 영언은 ‘세상에서 뜬 존재되기’와 ‘완전히 잊혀지기’(“책상 빼러 왔습니다”) 사이에서, 누군가의 기억에 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을 건다. 정박할 곳 없는 불확실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단 한명의 증인에게 발버둥치며 매달린다(<4인용 식탁>에서 전지현도 ‘세상에서 뜬 존재’였다. 마지막 정박할 자로 박신양을 믿었지만, 그가 부인하자 진짜 죽는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화면에서 정면을 응시하며 초아가 들리지 않는 말을 계속하는 장면 역시 같은 의미이다.

셋째, ‘목소리’로 존재한다. 공간을 점하지 않고, 듣는 이의 의식 속에 분산되는 파동으로서만 존재하는 ‘담지자 없는 목소리’는 물질적이기보다 정신적이다. 목소리 환청은 ‘귀신들림’ 혹은 ‘신의 부르심’의 징표이자 ‘초자아’의 목소리로 해석되고, 뇌의 병변이나 약물 등에 기인하는 시각적·촉각적 환각과는 달리 명백한 정신분열증의 증상이다.

넷째, 원하는 것만 기억한다. “내가 듣는 내 목소리와 남이 듣는 내 목소리가 다르다”는 말처럼, ‘내가 기억하는 주관적 자아’와, ‘남이 기억하는 객관적 자아’가 다르다. 주체는 죄의식을 벗기 위해 피해자 의식을 뒤집어쓰고 가해 기억을 말소하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르는 상태가 된다. 주체는 자신을 다 알지 못한다.

다섯째, 강박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영언은 “이렇게 계속 할 수는 없다”는 선민에게 “내 목소리가 이상해서 그러니?” 같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선민이 왜 찾는데?”란 질문에 내내 ‘목소리’ 타령이다. 스스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닌 ‘살고 싶다’이다”를 재차 묻고 확인시켜야만, 자신의 진짜 욕망을 깨닫고 재주체화된다.

영화는 폭압적인 학교시스템을 다루지 않는다. 선생들은 단지 무관심하며 아이들도 서로 무심할 뿐이다. 자신을 유령으로 느끼는 아이가 유일하게 붙잡고 싶은 친구와의 이별을 앞두고 버둥거리다 문득 깨닫는 슬픈 멜로 <여고괴담 4>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묻는다. “자신을 유령이라 느껴본 적 있나요?” 한때 유령이었던 자는 가슴이 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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