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춘향뎐>은 완성품이 어떤 모양일지 혼란스런 작품이었다. 시나리오는 따로 없고 판소리와 영상이 함께 가는 거다, 라는 감독의 설명으로는 어떤 영화가 나올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제작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지난 1월18일 <춘향뎐>이 첫 공개된 시사회장에서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은 “영화를 별로 많이 만들지는 않았지만 영화 공개하면서 이렇게 긴장되긴 처음”이라고 했다(‘영화를 별로 많이 만들지 않았다’는 건 농담이다. 태흥영화사는 동아수출공사와 함께 실제 영화제작을 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두 영화사 가운데 하나다). 임권택 감독도 찍는 동안 스스로 결과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건 물론 그다운 겸양이긴 하지만, 실제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고난도의 실험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영화 <춘향뎐>은 한국영화에서 아주 특별한 성과다. <춘향가>의 ‘소리’를 그처럼 열린 형식의 영화로 건져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팀워크는 아마도 지금 한국영화판에서 이태원-임권택-정일성, 이들뿐인 것이다. 임권택 감독은 조상현 명창의 <춘향가>완창을 듣고 소리가 머릿속에서 뱅뱅 돌면서 잊혀지지 않아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하지만, 나는 임 감독의 영화를 보고는 판소리 <춘향가>의 그 문학적 대사들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면서 잊혀지지 않았다. ‘사랑가’ ‘기생점고’ ‘변학도 생일잔치’처럼 비교적 잘 알려진 것들 외에도 상당히 재미있는 대목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고난과 비련을 쌓아가다 한순간에 이를 터뜨리는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대사는 우리 문학에서 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엑스터시를 제공하는 문장임에 틀림없다.
새삼 호기심이 생겨서, 19세기에 신재효가 채록했다는 <판소리 여섯바탕집>과 명창들의 사설집으로 엮은 <판소리 다섯마당>을 찾아보았다. 사대부 이론가인 신재효 선생이 채록한 것과, 명창들이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판소리는, 이야기구조는 같아도 에피소드들과 표현방식이 많이 달랐다. 하지만 어느 대목을 뜯어놓고 보아도, 비유와 풍자의 문학성이나 말장난의 경지는 탄복할 만했다. 조선조 이래 수백년간 수많은 소리꾼들에 의해 공동창작된 것이긴 하나, 판소리 다섯 마당이 한국의 셰익스피어라는 생각이 든 것은 과도한 자기애일까?
<춘향뎐>을 보고 나오면서 한 후배가 “임권택 감독이 <춘향가> 완창을 그대로 5시간 영상으로 만들면 정말 업적일 텐데”라고 했다. 글쎄, 배급문제를 생각 안 해도 좋다면 가능한 일일 테지, 그렇다면 그건 분명 대단한 업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