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주노명 베이커리> 제빵 자문, 곽지원·최두리 부부
2000-01-25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삶은 빵처럼 익어간다

엔딩크레딧에는 왜 꼭 사람만 들어가나요? <주노명 베이커리>의 ‘빵’이라면 이렇게 항의할만하다. 빵을 우물거리며 흘리는 무석(여균동)의 사랑 고백에 정희(황신혜)의 한숨이 그치고, 노명(최민수)이 만든 구두모양의 슈가케이크에 해숙(이미연)의 매서운 발길질이 멈추었으니 말이다. <주노명 베이커리> 제작진이 자문을 요청해왔을 때 곽지원(47)씨와 최두리(45)씨는 ‘빵’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에 흔쾌히 응했다. 하지만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감독의 주문이 여느 손님과는 달랐기 때문. 뭉실한 이미지를 딱 꼬집어내기가 쉽지 않아 밤을 꼬박 새서 만들어 간 케이크가 다시 작업실로 옮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주노명의 능숙한 손놀림 또한 이들 부부의 몫이었다. 열흘 동안의 연습으로 반죽을 다루는 노련한 품이 배어나올거라 기대를 했던 이들은 없었다. 배우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대역을 쓸 수도 없는 상황. 곽지원, 최두리 부부는 일단 가르치고 나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배우는 타고나나 봐요. 저희는 몇년씩 해서 얻은 기술을 그럴듯하게 흉내낼 수 있다니 말이에요.” 얼마 전 영화를 본 곽지원씨의 말이다. 바빠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최두리씨도 빵 씨즐장면을 찍으려고 특수 오븐까지 동원했던 한여름 촬영세트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한마디 보탠다.

“결혼생활 10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노명과 정희, 무석과 해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곽지원씨가 최두리씨와 줄곧 함께 빵을 구운 세월을 얼추 헤아리면 15년이 돼간다. 곽지원씨는 멀쩡한 화이트칼라 출신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서 국영기업체를 다니던 곽씨는 업무때문에 자주 드나들던 무역상사에서 최두리씨를 만나 82년 결혼했다. 진로에 대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던 이들이 서른살이 넘어 내린 결정은 일본 유학. 갓난아이를 부모님에게 맡겨놓은 채 수중의 얼마되지 않는 돈과 최두리씨의 일본어 실력만을 챙겨서 도쿄제과전문학과에 입학했다. 양과자 2년에 제빵 1년, 3년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 수업료만 해도 1억원. 그 때부터 화장실 청소, 도로 보수작업, 액세사리 장사 등 돈이 될 만한 건 가리지 않고 했다. 그 중 새벽에 일어나 과일 받아놓고 낮엔 수업받고 5시쯤 되면 배달 돌고 7시에 과일장사하던 때가 가장 힘들었다. ‘해뜰날’만 기다렸다는 이들 부부는 나란히 수석과 차석으로 졸업했고 곧바로 파디 케이크 하우스에서 웨딩케이크를 전공해서 교사 자격증도 따냈다. 동일본 공예과자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한 이들은 내친 김에 모은 돈을 털어 프랑스 벨루이제과학교에서 설탕공예과정까지 마쳤다.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빵처럼 되지 않으려면 삶 역시 벤치타임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는 이들 부부는 1년에 한달 정도는 여행을 위해 비워둔다. 그리스, 이집트, 터키, 이스라엘, 키프로스 등을 다니면서 ‘오감’으로 느낀 각 나라의 소박한 전통 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단다. 2년전 개인 점포와 학원을 차리고 난 뒤로는 시간을 낼수 없어 미뤄왔지만 곧 남미여행도 다녀올 생각이란다. “영화와 빵의 공통점이요? 원하는 빵의 맛을 보려면 원료를 배합하는 것부터 발효시켜 굽는 과정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우리나라에서 각광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같은 사람이 동일한 재료와 조건을 갖고서도 어제의 빵맛을 내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요컨대 정성과 기본이 생명이라는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높이 평가받는 영화의 고전을 만들어냈던 거장들처럼 말이다. 동갑내기인데다 오랫동안 한 동네에 살아 알음알음 친해진 정태춘, 박은옥씨가 서로를 음악으로 다독여왔다면, 곽지원씨와 최두리씨에겐 빵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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