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스텔스> 한국용 편집판 만들어낸 우리 영화관객들에 박수를
2005-08-04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스텔스>

지난달 28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텔스>가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원래 전세계 동시 개봉이었지만, 한국의 목요일 개봉 관행과 시차 탓에 본의 아니게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되는 영광(?)을 안았다. 개봉 첫주 흥행 성적은 26만명으로, 같은 날 개봉한 <친절한 금자씨> 146만명에 밀려 ‘세계 최초 개봉’이라는 타이틀은 초라해졌다. 하지만 뒷얘기로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대박을 터뜨렸다.

먼저 첫번째 뒷얘기. 미국판에서는 조종사 카라(제시카 비엘)의 불시착 장소가 북한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북한을 표시한 지도는 물론 인공기와 북한말이 등장하고, 부상당한 카라를 추적하는 군인들도 확실히 북한군이다. 하지만 국내 개봉판에서는 북한이라는 국명은 물론 인공기와 북한말도 사라졌다. 카라가 추락한 곳은 그저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 정도로 슬쩍 언급될 뿐이다.

사연은 이렇다. <스텔스> 국내 배급을 맡은 소니픽쳐스 릴리징코리아㈜ 관계자가 최종 편집 전 단계에서 영화를 본 뒤, 미 소니픽쳐스에 북한 관련 부분의 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북에 대한 묘사는 민감한 사항이고, 6자회담 성사 등 최근의 남북 화해 분위기에 저촉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주 관객층인 한국의 젊은층들이 북한을 적국으로 묘사하는 내용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고, <007 어나더데이>가 그랬던 것처럼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도 ‘당연히’ 작용했다.

미국판과 한국판이 다르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은 <스텔스>는 물론, 북한을 정의의 반대편에 선 ‘적국’ 정도로 묘사하는 할리우드 영화들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도 없고, 주한 미 대사를 불러다 호통을 칠 만한 일도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불편하고 괘씸하다는 것이다. 그래놓고도 흥행실적을 우려해 한국판에서만 북한 관련 내용을 쏙 뺀 <스텔스>의 ‘얌체짓’은 더 얄밉다는 얘기들도 나왔다.

하지만 이 괘씸한 와중에 내심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한국 개봉용 특별 편집판’을 제작한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한국의 영화 시장이 할리우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흐뭇한 것은 많은 한국 혹은 남한의 영화 관객들이, 나아가 국민들이 더 이상 북한을 일방적인 주적, 악의 축으로 매도하는 데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과 5년 전 북한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쉬리>가 600여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첫번째 뒷얘기에 비하면 사소하지만 네티즌들의 ‘애국심’을 자극한 두번째 이야기. <스텔스>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스텔스기의 자폭 장면에서는 ‘이젠 안녕’이라는 한국어가 뚜렷하게 들리는 한국 노래가 흘러나온다. 소니픽쳐스 릴리징코리아㈜ 쪽에서도 “롭 코헨 감독이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것 이외에 한국노래가 삽입된 경위를 모른다”는 이 해프닝과 관련, 오늘도 네티즌들의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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