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출신 여성감독인 미라 네어의 작품세계는 고정관념에 대한 부정의 연속이었다. 데뷔작 <살람 봄베이>는 익숙한 인도영화가 아닌 옛 네오리얼리즘이 연상되는 작품이었고, 이후 한동안 잊혀졌던 그녀는 분위기를 판이하게 바꿔 부르주아 가정의 시끌벅적한 결혼 준비 과정을 다룬 <몬순 웨딩>으로 돌아왔다. 두 작품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그녀의 다음 선택은 놀랍게도 19세기 영국의 상류사회를 그린 <베니티 페어>였다. 혹시 동양 여자와 서양의 코스튬 드라마의 어색한 조합이 걱정된다고? 매번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그녀는 이번에도 그것이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가 150년 전에 쓴 원작은 여전히 공감대를 잃지 않고 있으며, 타고난 열정과 의지로 삶을 꾸려나가는 베키 샤프는 현대의 위치에 놓여도 썩 어울린다. 네어가 군데군데 부여한 인도의 무게가 과다하다는 평도 있지만 영화의 이국적인 향취가 역으로 강화될 수 있었다. 필자처럼 원작을 못 읽은 사람에게 <베니티 페어>는 근래 보기 드물게 우아한 시대극이자 경쾌하고 세속적인 코미디로서도 손색이 없다. <베니티 페어> DVD 영상은 다소 탁한 편이다. 하지만 진하고 화려한 색감과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는 영화의 품격을 살리고 있다. 한정판 DVD는 다른 엔딩을 포함한 7개의 삭제장면, 인터뷰로 구성된 두개의 피처렛, 뮤직비디오 등의 부록을 수록하고 있으며, 사진과 대본집을 겸한 책자가 별도 제공된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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