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역류>를 만들 당시의 론 하워드 감독은 혹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1974)의 자리에 자기 영화를 들여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까? 화마(火魔)와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그리 많지 않은지라, <분노의 역류>의 일차적인 비교 상대가 <타워링>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고 보면 두 영화는 화재와 그것을 일으킨 음모에 대한 이중 대항이라는 스토리 얼개만이 아니라 당대 스타들을 전시하고 최신의 특수효과를 실험하는 블록버스터란 측면에서도 닮은 데가 있다. 물론 커트 러셀, 윌리엄 볼드윈, 로버트 드 니로, 제니퍼 제이슨 리 등으로 배치된 <분노의 역류>의 스타 라인은 폴 뉴먼, 스티브 매퀸, 윌리엄 홀덴, 페이 더너웨이, 프레드 애스테어 등으로 포진된 <타워링>의 그것보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반면, 특수효과가 거둔 실감나는 ‘효과’에선 <분노의 역류>의 판정승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이건 상당부분 세월의 탓이기도 하리라.
<분노의 역류>는 시카고 소방대에 근무하는 스티븐과 브라이언 형제를 이야기의 중앙에 놓는다. 이들의 아버지는 소방 진압 도중 순직한 용감한 소방대원. 그로부터 20년 뒤 이 두 아들이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소방대원이 된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형 스티븐은 동생 브라이언이 소방대에 들어온 것이 영 미덥지 않아 그를 혹독하게 다룬다. 결국 브라이언은 스티븐의 ‘의지’에 밀려 화재수사 부서로 스스로 ‘좌천’된다. 이제 깐깐한 화재수사관 림게일과 같이 일하게 된 브라이언은 최근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폭발 사건의 진상을 캐내려 한다. 이들의 수사는 이 사건이 시장 출마에 나선 시의원 마틴의 부패와 모종의 관련이 있음을 밝혀낸다.
<분노의 역류>는 전직 소방대원이었던 그레고리 위든이 집필한 시나리오를 스크린 위에 그려낸 작품. 그런 만큼 불타는 지옥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대원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편이다. 영화는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플롯의 다른 곁가지들을 뻗는다. 형제들간의 미묘한 라이벌 관계가 스토리의 저류를 흐르는가 하면, 폭발 사건과 관계된 음모와 비리, 미스터리가 스토리의 또다른 한축을 차지한다. 그 밖에 파열된 가정의 이야기와 남성 유대의 이야기가 이따금씩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야기들이 결말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진부하게 전개된다는 점. 예컨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을 연상케 하는, 풀리지 않는 수사에 도움을 주는 지적인 방화광은 실소를 자아낼 정도다. 그렇기에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내내 화면에 주의를 모으고 있기엔 다소 버겁다고 할 만큼 길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분노의 역류>가 재미없는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진정한 주인공인 ‘불’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 때문에라도 <분노의 역류>는 흥미를 돋우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영화다. 수사관 림게일의 입을 빌려 영화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생물이야. 숨쉬고 먹기도 하지. 그것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처럼 생각하는 거야.” 과연 숨었다가 갑자기 덮치기도 하고 화난 듯이 마구 부서버리는 그건 살아 있는 ‘에일리언’처럼 보인다. 당연히 그것과 싸우는 시간은, 스티븐의 말처럼 참으로 화려하고 멋진 “쇼 타임”(Show Time)이다. ILM의 기술력을 동원해 살아 숨쉬는 불을 만들어낸 론 하워드 감독이야말로 영화 속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것에 가장 매혹된 방화광임에 틀림없다.
소방대원들을 그린 영화들
불 구경보다 재밌는 게 어딨어
네로 황제가 그랬다던가? 로마 시내를 불질러 놓고선 그 ‘황홀경’에 빠져 시를 지었다고. 여하튼 꽤 오래 전부터 ‘불 구경’은 재미난 구경거리이자 일종의 스펙터클 관람 같은 것이었나보다(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일단 차치한다면). 근대적 스펙터클의 매체인 영화가 이런 볼거리를 놓쳤을 리가 없다. 일찍이 에드윈 S. 포터는 <미국인 소방수의 삶>(1902)이란 5분짜리 영화를 만든 바 있다. 기록 필름과 픽션 필름을 합성해 만든 이 영화는 화재 신호를 받은 소방대원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그들의 구조 활동을 보여준다.
영화 속의 소방대원들은 불을 끄는 일뿐 아니라 불을 지르는 일도 한다. 레이 브래드베리의 SF소설을 영화화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화씨 451도>(1966)에서 ‘소방대원들’은 활자 매체가 금지된 미래사회에 ‘불온한’ 그 책들을 태워버리는 일을 맡는다. 이런 자신의 직업에 회의가 든 한 소방대원이 지하의 문학옹호그룹의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존 길라민 감독의 <타워링>(1974)은 <포세이돈 어드벤처>, <에어포트> 등과 함께 70년대 재난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 샌프란시스코에 새로 지은 138층짜리 고층 건물에 화재가 나고 용감한 소방대원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려 노력한다는 이야기. 소방대원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처럼 고초를 겪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일본 영화 <119>(1994)는 한번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어느 바닷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마냥 출동하기만을 기다리는 소방대원 6명의 ‘조용한 나날들’을 그린다. 일본의 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인 다케나카 나오토 감독작. <함께 춤추실까요?>에서 코믹하게 춤추는 뽀글뽀글한 파마 머리의 남자가 바로 다케나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