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음악이 있기에 영화는 더 아름답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005-08-09
글 : 박은영
제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8월10일 개막

청풍 호반에서 음악과 어우러진 영화제가 열린다. 올해 처음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물 만난 영화, 바람난 음악’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6개 섹션 총 40여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제천 TTC 영화관과 청풍호반, 시민회관에서 8월10일부터 닷새 동안 열리는 이번 행사는 특화된 테마에 충실하면서도, 휴양지 휴가철에 걸맞은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내세운, 흔치 않은 지역 영화제로서 차분한 첫발을 내딛게 된다.

<워터 보이즈>에 이은 야구치 시노부의 유쾌한 성장 드라마 <스윙 걸즈>로 막을 여는 영화제는 이탈리아의 애니메이션 거장인 브루노 보제토의 대표작 <알레그로 논 트로포>로 피날레를 장식하기까지 다양한 음악영화를 선보인다. 음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상영작들은 모두 네개의 섹션에 걸쳐 있다. 우선 음악 마니아를 자처하는 팬들은 ‘마니아를 위하여’ 섹션을 눈여겨봐야 한다. 펑크록의 태동부터 발전을 다룬 <펑크록 연대기>, 강산에가 아시아 각지의 록가수들과 연대하는 과정을 다룬 일본의 다큐멘터리 <샤우트 오브 아시아>를 챙겨볼 만하고, 힙합과 타악기 연주, 한대수와 90년대 록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음악(인)에 관한 극영화나 뮤지컬적 요소가 녹아 있는 영화의 섹션 ‘씨네 심포니’에서는 이스트반 자보(<평결>)나 알렝 레네(<입술은 안돼요>)처럼 잘 알려진 거장들의 최신작은 물론, <오! 뷰리풀 라이프> <외계의 제19호 계획> 같은 젊고 발랄한 한국 단편들도 아우르고 있다. ‘음악인의 강추’ 섹션은 <접속> <정글 스토리> <플란다스의 개> 등 현역 영화음악감독과 대중음악평론가들이 선정한 음악이 좋은 한국영화 5선으로 꾸려진다. 음악에 대한 애정을 쏟아부은 거장들의 영화는 ‘음악을 사랑한 감독들’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로버트 알트만, 장 뤽 고다르, 데릭 저먼 등 10인의 연출가가 만든 거대한 오페라 영화 <아리아>, 더 밴드의 고별 공연 실황을 다룬 마틴 스코시스의 전설적인 음악 다큐 <라스트 왈츠>를 비롯해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톰 에고이앙, 마이클 윈터바텀의 음악에 대한 열정도 엿볼 수 있다.

음악영화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영화팬들을 위한 카드도 남아 있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갑게 들려줄 ‘글로벌 파노라마’에서는 규모는 작지만 개성이 강한 신진 또는 중견 감독의 작품과 만날 수 있다.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올해 좋은 반응을 얻은 <트랜스 아메리카>, 프랑스 평단이 주목하는 아르노 데스플레셍의 최근작 <왕들과 왕비>,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 인생을 담은 전기 영화 <프랑소와 트뤼포:열정의 삶> 등이 눈에 띈다. 어린이와 청소년도 참여할 수 있는 가족영화 섹션 ’패밀리 존’도 완성도 높은 가족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구비해놓았다.

음악영화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음악과 영화를 결합한 이벤트 ‘원 썸머 나잇’도 매력적이다. 청풍랜드 호반 야외무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그 여운을 간직한 채로 라이브 공연의 열기에 취하면 된다. 이상은 강산에, 언니네이발관, 이한철, 블랙홀, 클래지콰이 등 개성있는 뮤지션의 음악이 사흘밤 동안 흘러 넘칠 예정. 입장권은 개폐막식 8천원, 일반상영작 5천원, 원 썸머 나잇 1만2천원, 심야상영인 미드나잇 피버는 1만원이며, 인터넷과 현장 매표소와 지정매표소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영화제 홈페이지 http://www.jimf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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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소개

스윙걸즈/ 개막작

십대들의 경쾌한 성장담을 즐겨 다루는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로, 싱크로나이즈에 도전하는 소년들의 이야기 <워터 보이즈>의 여성 버전 혹은 음악 버전으로 보면 된다. 보충수업으로 지리한 여름방학을 보내던 낙제 여학생들이 우연히 밴드부의 식중독 사건에 연루되면서, 엉겁결에 밴드부원들의 빈자리를 메우게 된다. 이들이 도전한 종목은 스윙재즈. 겨우 악기를 배정받고 소리를 내게 됐을 즈음, 밴드부원들이 회복해 돌아오지만, ’뭔가 해냈다’는 만족감을 맛본 소녀들은 억울해서 포기할 수 없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중고 악기를 사고, 연주 연습에 열을 올리다, 경연대회 출전까지 감행한다. 냉소와 무관심의 대상이던 십대들이 무언가에 열정을 기울이고, 스스로 세상 앞에 당당해지는 과정이 시종 유쾌발랄하게 펼쳐진다. 영화 속의 소녀들은 대부분 오디션으로 선발된 초짜 연기자들로, 실제로 강도 높은 훈련을 거쳐 자연스러운 연기는 물론 라이브 연주 실력까지 뽐냈다. 지난해 일본에서 ‘새로운 취향의 청춘 영화’로 각광받았고, 일본아카데미상에서 신인 연기상과 각본상, 음악상 등을 휩쓸었다.

알레그로 논 트로포/ 폐막작

“할리우드에서 이미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요? 아니, 이럴 수가.”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작품을 만들려던 제작자는 한발 늦었다며 비통해한다. 그가 거론한 할리우드 작품이란, 디즈니의 <판타지아>다. 미국판이 어떻든 포기할 수 없는 그는 할머니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지휘자, 감옥에 가둬뒀던 애니메이터를 불러 모아 작품을 만들게 한다. 드뷔시, 드보르작, 라벨, 시벨리우스, 비발디, 스트라빈스키의 곡이 흐르는 가운데, 곡조에 따라 다른 테마와 스타일의 영상이 춤을 춘다. 유머러스하고 에로틱한 초현실적 화풍이 펼쳐지는가 하면, 독설과 풍자의 날이 선 만평조의 그림이 흘러가기도 한다. 막간의 흑백 실사 화면에는 애니메이터와 지휘자의 불화, 애니메이션에서 빠져나온 캐릭터들로 인한 소동이 코믹하게 펼쳐지며, 나름의 기승전결을 이룬다. 이태리 출신의 브루노 보제토는 이 작품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이후에도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펑크록 연대기/ 마니아를 위하여

부제를 붙이자면, ‘스쿨 오브 펑크’ 쯤 될까. <펑크록 연대기>는 펑크의 태동부터 발전을 성실하게 짚어주는 다큐멘터리로, 제목 그대로 펑크는 음악의 형식이 아니라 ‘태도’라고 일갈하는 영화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누군가는 부시를 정면으로 공격한 마이클 무어의 작품도 펑크라고 칭한다. 펑크는 체제와 자본에 저항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영화는 반항아의 원형인 <와일드 원>의 말론 브랜도, 척 베리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충격적인 등장, 반전 운동과 맞물린 히피들의 등장 등 시대와 정서를 훑어 보여주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벨벳 언더 그라운드, 섹스 피스톨스, 소닉 유스, 너바나에 이르는 수많은 뮤지션의 공연과 인터뷰는 물론 짐 자무쉬 등 펑크의 영향을 받은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의 인터뷰도 접할 수 있다. 감독 돈 레츠는 영국 펑크를 주도하는 DJ로 활약하고, 클래쉬의 장편뮤직비디오로 그래미상을 수상한 베테랑답게 상당한 공력을 보여준다.

라스트 왈츠/ 음악을 사랑한 감독들

캐나다 출신 더 밴드는 1976년 추수감사절에 ‘라스트 왈츠’라는 이름의 해산 콘서트를 열고, 당시 <비열한 거리>를 촬영하던 마틴 스코시스는 이들 여정의 끝을 기록하기로 한다. 밥 딜런 등의 백밴드로 활동하다가 68년 데뷔한 더 밴드는 순회 공연을 통해 팬들과 만나며 당시 록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는 밥 딜런, 에릭 클랩튼, 조니 미첼 등이 함께한 이들의 마지막 공연 실황을 차분히 보여주며, 사이사이 멤버들의 인터뷰를 들려준다. “우린 순회 공연을 통해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고, 우리 몫을 챙겼어요. 그리고 우리의 운이 다했다는 걸 알았죠. 행크 윌리암스도 지미 핸드릭스도 그랬던 것처럼. 순회 공연은, 오래 유지하기 힘든 생활 방식이었어요.” 담담하게 당시의 심경을 이야기하는 로비 로버트슨의 그늘진 얼굴 뒤로, 스코시스는 멤버들의 연주 무대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조용하고 감동적인 피날레를 연출한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복원판으로 상영된 바 있는 이 작품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봐도 여전히 세련됐다.

트랜스아메리카/ 글로벌 파노라마

음악영화는 아니지만 잔잔한 감동이 있는 특별한 영화. 성전환자인 브리는 아직 남성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지 못했다. 마지막 수술을 남겨두고 열심히 돈을 모으던 어느 날, 아들 토비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전갈을 받는다. 남자로 살던 시절에 얻은 아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던 브리는 죄책감에 어쩔 수 없이 보석금을 내주지만, ‘내가 네 아버지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오갈 데 없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게 된 브리는 마약을 끊지 못한 아들과 옥신각신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정체를 노출한다. 여자로의 변신이 거의 다 끝난 아버지와 동성에게 더 매혹을 느끼는 아들은 그들 자신 때문에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서로의 존재와 정체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길 위에서 이뤄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에 대한 각성과 성장의 드라마. 묘한 느낌을 주는 브리 역의 펠리시티 허프만은 이 작품으로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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