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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여기가 낙원이라구, <아일랜드>
2005-08-10
글 :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 이관용
<아일랜드>를 통해 본 클론과 대한민국 고딩의 서글픈 공통점

<아일랜드>는 15년 뒤의 이야기다. 15년 뒤의 미래를 보면서 15년 전의 과거가 겹쳐졌다. 대략 나의 고딩 시절 말이다. 나의 고딩 시절은 오늘도 대략 반복되고 있다. 물론 미국영화인 <아일랜드>가 의도했을 리는 없지만, 클론의 세계는 한국 중고딩의 현실과 매우 닮았다. 복제인간(클론)의 세계는 입시지옥의 복제처럼 보인다.

클론의 일상과 고딩의 하루는 매우 비슷하다. <아일랜드>의 클론들은 스스로가 클론인지 모른 채 살아간다. 대한민국 고딩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따위는 접어둔 채 살아야 한다. 클론들은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고, 비슷한 음식을 배급받는다. 고딩들도 교복을 입고, 똑같은 급식을 먹는다. 하는 일도 비슷하다. 클론들은 자신이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른 채 매일 단순작업을 반복한다. 고딩들도 자신이 배우는 지식에 의문을 품지 말고 단순암기를 반복해야 한다. 분류체계도 유사하다. 장기를 제공하는 ‘제품’인 클론들은 ‘링컨6-에코’와 같은 일련번호를 가지고 있다. 그 일련번호는 제품이 출시된(클론이 태어난) 시기를 나타낸다. 예컨대 ‘에코’라는 코드는 3년차를 의미한다. 학생들도 몇 학년 몇반 몇번으로 불린다. 생활공간도 비슷하다. 클론이 (사실상 감금된 채) 살고 있는 지하의 건축물은 학교의 구조를 닮았다. 클론들도 가끔 모여서 조회 비슷한 것을 한다. 공통된 교훈은? 묻지마, 도망치지마, 다칠 거야.

클론은 복제회사(메릭 바이오테크사)의 관리자들에 의해 철저히 관리당한다. 관리자들의 임무는 교사와 학부모의 구실과 비슷하다. 관리자들은 바깥 세상이 오염됐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클론들이 외부 세계를 꿈꾸지 못하도록 만든다. 클론의 세계만이 안전지대고, 외부 세계는 오염지대다. 교사들도 학교 밖의 세상이 위험하다고 가르치고, 부모들도 아이들이 바깥 세상에 물들까봐 걱정한다. 연애에 관한 규율도 비슷하다. 클론에게 연애는 금지돼 있다. 오직 우정만이 허용된다. 남녀 클론이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접근금지 경고가 주어진다. 물론 학교에서도 연애는 권장되지 않는다. 오직 우정만이 권장된다. 남녀 고딩이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교사와 부모의 각별한 지도가 요망된다. 클론들은 철저한 속임수의 결과로, 성욕마저 잃어버리고 섹스조차 모른다. 오직 가상 게임만이 욕망의 탈출구다. 고딩들도 욕망을 유예당하고, 게임으로 풀어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제복 속에서도 거세당한 욕망은 꿈틀거린다.

분출하는 욕망을 억압하기 위해서는 달콤한 꿈이 필요하다. 클론들은 단순한 일상을 지긋지긋해한다. 단순한 일상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희망은 낙원인 ‘아일랜드’로 가는 것이다. 매일 아일랜드로 가는 클론을 뽑는 ‘로또’가 실시된다. 클론들은 ‘로또에 당첨되면 고생 끝, 낙원 시작’이라는 꿈으로 산다. 고딩들도 단순한 일상을 지겨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도 명문대라는 낙원이 제시된다. 명문대 합격의 꿈은 로또 당첨의 꿈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일랜드는 없다. 명문대 합격이 낙원으로 가는 길이 아닌 것처럼.

세상살이의 핵심은 거짓말과 섹스?

아무리 ‘족쳐도’ 탈선하는 고딩이 있는 것처럼, 아무리 격리해도 탈주하는 클론이 생기게 마련이다. 클론답지 않게 매사에 의심이 많았던 ‘문제 클론’인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는 우연히 날아든 한 마리 벌레를 통해 바깥 세상의 존재를 알아버린다. 자신이 장기 공급을 위해 사육되는 클론임을 눈치챈다. 그리고 탈주를 시도한다. ‘까진’ 클론 링컨은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우정을 나누었던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의 손을 잡고 지하 건축물에서 도망친다. 복제회사는 용병을 고용해 탈주한 클론들을 쫓는다. 클론을 만든 메릭 박사(숀 빈)는 용병에게 “클론들이 15살의 지능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정말 클론은 딱 중고딩의 지능을 지녔던 것이다. 이처럼 시대가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억압의 형식은 통하게 마련이다.

현실로 탈주한 링컨과 조던은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이다. 코브라 무서운 줄 모르고, 똥과 뒷간의 뜻조차 모른다. 링컨과 조던은 용병과 경찰에 쫓기면서 세상물정을 배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 한 가지, 기존의 성역할은 배우지 않았는데도 고스란히 반복한다. 링컨이 오토바이를 운전하면 조던은 뒷자리에 타고, 링컨은 ‘남자답게’ 위기에서 조던의 목숨을 구한다. 다만 성에 먼저 눈뜨는 역할만이 여성인 조던의 몫이다. <아일랜드>가 제시하는 세상살이의 핵심은 거짓말과 섹스다. 링컨과 조던은 거짓말을 배우고, 섹스를 경험하면서 어른이 된다. 혹은 인간이 된다. 링컨과 처음으로 섹스를 나눈 조던은 “아일랜드는 현실이고, 여기가 아일랜드”라고 말한다. 어머나, 여기가 낙원이라고? 아무리 첫 경험의 감동에 겨워 막말을 했다쳐도,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낙원이라니, 웬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션? 15살 조던양, 아일랜드에서 사는 어른들이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단다. 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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