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토이는 가도 스토리는 남는다, <토이 스토리2>
2000-01-18
테크놀로지의 놀라운 발전, 그러나 평범한 이야기 <토이 스토리2>

95년 풀프레임 100% 디지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했다. 플라스틱 병정들의 절묘한 움직임, 기괴하기 이를데 없는 스커드의 인형들, 그리고 버즈와 우디가 함께 벌이는 호쾌한 추격신까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토이 스토리2>는 픽사 스튜디오의 제작팀에 따르면 <토이 스토리>보다 스무배 이상 더 정교해진 테크놀로지를 선보이고 있다. 찢어진 인형 팔 사이로 삐져나온 스폰지의 질감이라니. 그리고 비행기를 쫓아 말타고 활주로를 달리는 그 다이내믹한 스피드의 향연이라니. 오죽하면 <토이 스토리2> 팀의 가장 큰 고민중 하나가 “너무 발전해버린 기술실력을 어떻게 하면 튀지않게 사용할 수 있을까”였겠는가. 영화 시작하자마자 펼쳐지는 현란한 비디오게임 시퀀스는 엄청나게 수준 높아진 테크놀로지를 튀지 않게 자랑하려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버즈가 전편에 비해 너무 매끈하고 정교하게 그려지면 “저 버즈가 우리가 아는 그 버즈 맞나?” 하며 관객들이 헷갈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어색해야 되는데…, 잘 안 되네

<토이 스토리>에서 장난감들은 생기있고 정교하게 그려진 반면 오히려 인간들은 딱딱하고 어색하고, 말하자면 ‘장난감같게’ 묘사돼 장난감의 눈으로 본 세계를 보여주는데 일조했는데, 그런 기조는 <토이 스토리2>에서도 역시 이어졌으나 여기에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몇년 사이 너무도 발전해버린 소프트웨어의 힘은 더이상 그런 어색하고 딱딱한 질감을 표현하는 데 적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이 발전한 프로그램의 위력은 보여주고 싶고 그렇다고 전편의 고유한 모습을 훼손하고 싶지는 않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알이다. 얼굴 굴곡 등은 여전히 ‘어색하게’ 장난감처럼 만들되 팔에 난 털, 손끝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 코를 골 때 미세하게 떨리는 콧털 등 디테일들을 통해 발전된 기술을 자랑하는 전략이다. 이에 비하면 앤디의 엄마는 여전히 전편에서와 같이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실은 전편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렇듯 <토이 스토리2>는 <토이 스토리>의 뼈대를 보존하는 가운데 아기자기한 재미를 강화하고 발전된 기술을 얹어, 연속성 있는 새로움을 만들어내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사실 <토이 스토리2>의 신기술은 경이로움 이상이다. 픽사 스튜디오의 야심도 엄청났다. 예를 들어 책장선반 한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잊혀져가던 펭귄인형 위지를 보자. 위지와 그 주변을 뒤덮은 먼지 알갱이들 중 단 한톨도 더스트 이펙트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한알한알이 다 질감과 자연스러움을 살려 직접 프로그램한 것이다. 장난감 납치범 알의 경우 그를 묘사하기 위한 각종 소스와 부분묘사들을 다 합치면 무려 200MB의 용량이었다고 한다. 물론 픽사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중 하나인 마리오넷이 전체골격을 그대로 둔 채 디테일을 추가하는데 소프티마주 등 기존 소프트웨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편리함을 갖추었다고 해도, 또 그래서 아무리 마리오넷, 렌더맨 등 픽사 고유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들이 정교하다고 해도, 이것은 수작업 예술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드는 공보다 덜 공을 들였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그런 작업인 것이다. 다이내믹하고도 자연스런 스피드를 표현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애니메이션에서든지 가장 고난도의 작업이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애니메이션이란 우선 정지된 장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이 스토리2> 활주로 추적신의 현란한 스피드 표현은 “마치 실사 영화 같다”는 찬사가 과장스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기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토이 스토리2>가 <토이 스토리>보다 낫다는 평가는 어딘지 마음에 걸린다. 물론 작품에 대한 느낌과 판단은 그야말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겠지만, 그리고 어느 작품이든 대개의 경우 속편은 전편보다 못해왔기 때문에 <토이 스토리2>의 만듦새가 더욱 돋보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이라는 식의 평가는 아무래도 거슬린다. 다른 분야 다 차치하고 디지털 애니메이션만 가지고 보자면, 픽사에서 앞으로 나올 작품들은 다들 기술적으로 더 뛰어나면 뛰어났지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은 거의없다. 나중엔 어쩌면 <토이 스토리2>를 보면서 지금 <로보트 태권V>를 볼 때처럼 낯선 느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중에 하는 자의 잇점을 누릴 수밖에 없는 기술 분야를 빼놓고 말한다면, <토이 스토리2>는 <토이 스토리>에 비해 어딘지 빈약하고 허전한 느낌을 준다. 나는 그것이 철학적(?) 물음에 대한 적당한 얼버무림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근사하게 질문을 던져 놓고는 답을 회피해 버린달까,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뭉개버린 그런 느낌이다.

살아있다는 것으로 행복하였던 그들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한때나마 사랑받았으므로 만족하였네라. 우리 본분에 충실하려 노력했으므로 충분하였네라. 좀 신파조로 옮겨지긴 했지만 <토이 스토리2>는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 장난감의 운명이란 게 뭘까? 그들의 가장 큰 행복은 주인에게서 사랑받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이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학대를 한다면? 버린다면? 아예 잊어버린다면? 아니, 그 이전에, 애초부터 아무 주인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래도 장난감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나의 주인은 언제까지 나를 데리고 놀까? 영화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장난감을 가지고 대학을 다니거나 신혼여행을 갈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젠가는 주인과 결별을 하고, 따라서 인생의 가장 충만했던 시기와 이별을 하고,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카우보이 우디에게는 이런 위험을 ‘영원히’ 벗어날 기회가 온다. 산뜻하게 장식된 채 유리 너머 진열장에 쾌적하게 전시돼 박물관과 함께 “무한의 저편까지”(To eternity and beyond) 영원을 사는 것이다. 우디에게 있어 이것은 삶의 무게와 맞먹는 딜레마다.

<토이 스토리>를 보면서 성인관객들은 이 작품이 던지는 범상치 않은 질문에 놀란 바 있다. “너의 굳은 신념과 달리, 알고보니 네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이 확인됐을 때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 말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던 용맹한 우주전사 버즈가 실은 대량생산 된 수만, 수백만의 버즈 중 하나일 뿐이며 팔에 달린 레이저도, 등에 달린 일체형 날개도, 가슴에 달린 복잡한 단추들도 사실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타난 버즈의 행동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망가진 팔을 고칠 생각도 안 하고, 앤디 동생 몰리가 이끄는대로 꽃장식을 달고 ‘이웃집 부인’ 역할을 맡아 다른 예쁜 인형들과 함께 티테이블에 멍하니 앉아 있는 광경은 관객들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주었으며 결국엔,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기자신일지라도 주어진 생명(?)을 소중히 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권유는 비록 진부하다 할지라도 가슴 찡하게 했다. 가장 비인간적일 것 같은 디지털 기술이 가장 인간적인 질문과 감동을 전한다는 아이러니도 놀라웠다. 그리고 우디 역시 버즈 못잖게 소중한 앤디의 장난감이라는 영화의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극장밖 완구점에선 버즈인형만이 잔뜩 만들어져 불티나게 팔렸던 현실은 쓴웃음나는 또하나의 아이러니를 제공해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다시 던져줬다.

현문우답, 거대한 화두에 평범한 해결

그런데 <토이 스토리2>는 어떤가? 물론 범상치 않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아니, 질문의 무게만 가지고 따지자면 완전 메가톤급이다. “네가 네 구실을 다 못한다고 해도 너는 여전히 너이겠느냐? 언젠가 버려진다고 해도 네 구실을 할 수 있는 동안엔 행복하단 말이냐? 버려진 뒤에도 사랑의 추억을 가지고 평생을 추스릴 수 있겠느냐?” 하는 물음들은 관객의 가슴을 턱 막히게 한다. 야, 좋아, 잘 물어봤어. 그럼 이 사랑스런 장난감들이 거기에 대해선 뭐라고 답하는지 들어볼까. 그러나 두근거리던 마음은 허탈해진다. 궁금증은 그대로 둔채 다른 재미만 잔뜩 채워준 뒤 너무나도 허망한 말 몇 마디로 달아나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장난감들은 주인과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거야.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버린대도 우리끼린 영원히 친구잖니!” 질문에 대한 대답의 이 가벼움이라니. 이 속보이는 얼버무림이라니. 따뜻한 국이 먹고 싶었는데 크림케이크만 잔뜩 먹은 듯한 느낌의 이 찜찜한 포만감이라니. 이런 것을 현문우답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장난감이 언젠가는 구식이 돼버리는 것처럼 오늘의 테크놀로지 역시 내일이면 구식이 된다. 구식 테크놀로지의 운명은 목청 고장난 펭귄인형의 운명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장난감이나 테크놀로지가 구식이 되면 그것들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스토리는? 정교하고 무게 있게 잘 만들어진 스토리는 1천년이 지난대도 구식이 될지언정 무용지물이 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핵은 사실 별로 변해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다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토이 스토리2>가 스토리의 무게를 구식장난감 취급하며 소홀히 다룬 것 같아서 섭섭한 것이다. 그것은 옛날 어렸을 때 가지고 놀다가 언제 버렸는지도 모르게 버려버린 내 종이인형 보따리나 마론인형 살림살이를 떠올릴 때의 아쉬움과도 상당히 비슷하다.

오은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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