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의사인 빌(톰 크루즈)과 앨리스(니콜 키드먼) 부부는 예쁜 딸과 함께 고급 아파트에 살고 부유한 고객들이 여는 화려한 파티에 참석하는 등, 겉으로만 보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완벽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빌은 파티에서 돌아온 뒤 앨리스로부터 자신 이외의 남자에 대해 성적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그는 낙담한 상태로 집을 빠져나오게 되고, 바로 그 순간부터 기묘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사건들과 연속으로 조우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원작 제목이 ‘꿈의 소설’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현실과 환각이 몽롱하게 뒤섞인 상태로 속 시원한 해결이나 설명 없이 그대로 이어지다가 끝난다. 흠 하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생활이 깨지고 불안과 혼란이 엄습해 온다는 심리적 공황 상태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느 정도 현실과의 화해를 이루는 것 같지만, 결국 가면을 쓰고 연출한 허위와 그것으로 가득 찬 무의미한 생활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짙은 여운을 남긴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치고는 조금 소박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장대한 스펙터클도 없고 뭔가 거창한 테마를 다룬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시각적, 심리적 충격은 그의 다른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느 영화 같았으면 부부끼리의 시시한 말싸움으로 간단히 대체했을 법한 이야기를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가로지르는 ‘심리적 오디세이’로 격상시킨 연출은 ‘역시 큐브릭!’이라는 감탄사가 나올 법하다. 항상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해 온 이 영화 작가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은 멈출 줄 모르는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4:3 스탠다드 화면비 영상은 비교적 최근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화질 면에서는 좀 불만스럽다. 화면은 계속해서 지글지글 끓고, 선명도는 떨어지며 사물의 윤곽선 표현도 깔끔하지 못하다. 특히 일부 어두운 장면에서 이런 현상들은 더욱 심하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작품 자체의 조명 설계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즉, 이 영화는 가능한한 인공조명 대신 화면 안의 광원을 최대한 살려 촬영되었기 때문에 DVD의 화질에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돌비 디지털 5.1 사운드는 드라마라는 작품의 특성상 서라운드 효과가 활발하지는 않다. 대사를 또렷하게 전달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할 듯.
부록으로는 큐브릭과 관련된 세 사람의 인터뷰가 볼 만하다. 이 영화의 두 주역인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그리고 큐브릭의 미완 프로젝트였던 <A.I.>를 완성시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인데, 모두 엄청난 칭찬 릴레이에 가깝지만 큐브릭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그러한 칭찬도 ‘오버’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특히 3년간 영화를 만들면서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크루즈와 키드먼은 큐브릭의 서거에 대한 소감을 묻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거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큐브릭을 정말로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요즘 나오는 DVD들처럼 화질과 사운드, 부록이 빵빵한 타이틀은 아니지만 <아이즈 와이드 셧>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한 거장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DVD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안에 담긴 내용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