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독립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05가 8회째를 맞이한다. 올해도 역시 음악(고성방가), 미술전시(내부공사), 무대예술(이구동성), 거리예술(중구난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열리게 될 이번 행사 중 아시아 독립영화의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부문은, ‘암중모색’. 8월20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홍익대학교 부근의 ‘떼아뜨르 秋’에서 열리는 이 영화제는, 예년과 달리 개별작품이 아닌, 꾸준히 장편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작가를 통해 아시아 독립영화의 스펙트럼을 재구성한다. 이에 한국, 대만, 일본 독립장편영화 작가의 대표주자로 선정된 이들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황철민, 대만의 우미선, 일본의 마쓰다 아키라. 영화제 기간 중에는 이들의 장·단편 12편과 이들이 추천한 각국의 독립영화 3편이 상영된다.
<프락치>를 비롯하여, 독일 유학 시절 완성한 16mm 장편영화 <퍽 햄릿>, 정선 카지노를 배경으로 삶의 모순을 그린 디지털 단편 <삶은 달걀> 등을 상영하는 황철민 감독.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 극영화를 넘나드는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그는, 정치적인 화두를 실험적인 영상에 담아왔다. 독립영화계에 디지털 장편이 또 다른 가능성으로 부상하던 무렵 완성된 <그녀의 핸드폰>은, 감독 자신이 연출, 촬영, 편집 등을 소화한 1인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영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연인의 자동차 여행에 남자의 친구가 동행하면서 벌어지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감정의 변화를 소박하게 묘사했다. 감독의 카메라는 자동차 앞좌석과 뒷좌석을 넘나들고, 여관방, 노래방, 식당에서 주인공들과 합석한다. 그 결과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는 연인의 낯간지러운 장난, 자신이 먼저 친구를 초대했지만 막상 여자친구가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자 불안한 마음에 유치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남자의 행태 등 예정된 상황과 갈등은 몰래카메라처럼 단순하고 은밀하다.
대만의 우미선 감독은 인간의 감성과 삶을 서정적인 화면에 담아왔다. 미국 유학 시절 제작한 단편 <반 고흐의 귀>, 30대 남성의 도시생활을 통해 그의 내면을 표현한 <플라피 랩소디>, 실험적 다큐멘터리 <실험적 대만인> 등을 선보일 예정. 대만 금마장영화제 최고예술연출상을 수상한 35mm 장편 <드롭미어캣>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대만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다. 전생에 유명한 만화 캐릭터의 이름을 가진 일본인이었다고 믿는 헤이슈는 아무도 악기를 다룰 줄 모르는 이들이 만든 동네밴드에 들어간다. 그가 우상처럼 여기는 뉴스앵커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Behind Paradise>는 일상의 곳곳에서 기묘한 잠언을 들려주고, 실직자를 박멸하겠다는 정부의 음모가 진행되는 가운데 새 천년이 다가온다. 광고와 뮤직비디오 작업을 병행하는 감독답게 시적이고 리듬감 있는 화면이 익숙하고도 낯설다.
자생적이고 개인적인 독립영화 제작방식이 유난히 활발한 일본. 그러나 8mm장편 <그 녀석의 계절>, DV장편 <냄비 속>, 16mm장편 <꿈의 축제>, DV중편 <산책> 등 다양한 포맷으로 작업을 계속해온 마쓰다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때론 가볍고 때론 엽기적인 일본 독립영화의 어떤 흐름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이번 행사의 개막작인 <산책>은 넉달 동안 주말마다 동네를 산책해온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두 남녀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를 추적한다. 무더운 초여름을 배경으로 동네의 지형지물을 익혀나가는,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산책과 이들의 은밀한 인터뷰가 병행된다. 이를 통해 남녀관계의 잔인함, 마음과 늘 일치하지 않는 말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사건이 흥미롭게 정체를 드러낸다. 긴 호흡으로 보여지는 일상과 관계의 아이러니가 잔잔하고 묵직하다.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진실의 문>을 비롯해서 한국과 대만, 일본의 독립영화 작가가 서로 다른 이유로 추천한 영화들도 준비되어 있다. 한 작가의 대표작, 그의 추천작을 살펴본 뒤에는, 세명의 작가가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석하여, 이들에 대한 좀더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독립장편영화 제작을 위한 조건들’(마쓰다 아키라), ‘뮤직비디오에서 다큐멘터리까지… 영상의 감수성을 말한다’(우미선), ‘<프락치>! 제작에서 극장상영까지의 이야기’(황철민) 등 워크숍의 주제는, 이들의 작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 감독이 한자리에서 관객과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며, 각국의 독립영화 제작 현실과 경향을 소개하는 암중모색 토크쇼도 준비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