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살아있는 시체와의 결혼, 팀 버튼 감독의 <유령신부>
2005-08-18
글 : 김혜리

팀 버튼과 조니 뎁 커플의 신도에게 올 가을은 최고의 추수감사절이다. 조니 뎁이 윌리 웡카로 분하는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달콤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조니 뎁이 주인공 목소리를 더빙한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유령신부>가 베일을 벗기 때문이다. <유령신부>의 원형은 실수로(!) 시체를 신부로 맞게 된 유대인 사나이에 관한 19세기 러시아 민담이다. 민담에 나오는 남자는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새색시를 두고 별뜻없이 땅속에서 튀어나온 손가락 뼈에 반지를 끼워주는 바람에, 신성한 언약을 지키라고 다그치는 시체 신부에게 발목을 잡힌다. 이미 죽은 신부라니 “이 결혼 무효야!”라고 외치기에 이보다 버젓한 이유가 없을 것 같지만, 청년은 라비들의 판단에 운명을 맡긴다. 언뜻 단순한 괴담 같은 이 옛날이야기 뒤에는 끔찍한 역사의 흔적이 스며 있다. 반유대주의가 유럽에 팽배했던 19세기에 무모한 인종주의자들은 유대인의 결혼 행렬을 습격해, 다음 세대의 아이를 잉태할 신부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의복을 입은 채 매장하는 전통에 따라 신부는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지하에 묻혔고, 이 민담은 그녀들에 대한 위령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유령신부>는 무엇보다,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보다 사후 세계를 더 생기있게 창조하는 팀 버튼 고유의 장기를 오랜만에 만끽할 수 있을 법한 기획이다. 청년 빅터(조니 뎁)는 비록 중매 결혼이지만 사랑스런 여인 빅토리아(에밀리 왓슨)와 결혼식을 앞두고 설렌다. 그러나 조니 뎁의 캐릭터답게도 전전긍긍하다가 숲속에서 예행연습을 시도하던 빅터는 땅 위로 튀어나온 시체 신부(헬레나 본햄 카터)의 손가락 뼈에 결혼반지를 끼우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고집 센 그녀의 손에 이끌려 죽은 이들의 나라로 끌려들어간다. 두고 온 새색시가 눈에 밟히면서도 빅터는 어찌 된 일인지, 빅토리아 시대의 칙칙한 현실보다 한층 흥겨워 보이는 사자(死者)들의 나라에 마음 한끝을 붙들리게 된다. <유령신부>는 <빅 피쉬>의 화해 무드나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화사함에 슬쩍 토라져 있는 팀 버튼 골수팬이라면 기대를 걸어볼 만한 작품. <유령신부>의 예고편을 본 관객의 가장 걱정스런 반응이라면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너무 비슷한 것 아닐까?”라는 우려일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에 새로 진출하는 런던 빈튼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작업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면, 우리는 이 신부에게 키스해도 좋을 것이다.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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