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본드를 사랑하지 않은 본드걸, <007 언리미티드>의 소피 마르소
2000-01-1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소피 마르소는 007 시리즈의 유서깊은 법칙을 깨뜨렸다. 단단하게 몸을 감싼 상복이나 음모를 주도하는 계략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다리 때문에 캐스팅되진 않았다”고 우기는 소피 마르소도 물론 풍성하게 굴곡진 육체 때문에 007 시리즈에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본드걸 본연의 임무를 배반하고 제임스 본드를 위한 여자가 되길 거부했다. 소피 마르소는 처음으로 다른 남자를 사랑한 본드걸이다. 이처럼 소피 마르소는 사람들의 욕망에 부응하면서도 그녀의 방식대로 돌파구를 찾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열세살에 사람들 앞에 나타나 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노출시켜야 했던 소피 마르소는 그렇게 항상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1980년, 말간 눈빛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라붐>의 소녀를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아마 속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인형처럼 아꼈던 이 10대의 여배우가 스물네살 연상의 안드레이 줄랍스키와 때이른 동거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그가 연출한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에서 숨김없는 육체를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녀의 얼굴과 여인의 몸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간은 은밀한 흥분의 순간이라는 것을, 육체의 성장이 나이를 앞질러 갔던 자신이 사람들에게 바로 그런 대상이라는 사실을, 소피 마르소는 눈치챈 듯 보였다. 그런 영민함으로 소피 마르소는 바로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냐는 듯 그 경계를 뛰어넘었고, 어린 시절과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이후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이른 나이에 데뷔한 많은 배우들과 다른 궤적을 그렸다. 때로 파멸적인 삼각관계의 중심으로(<L’amour braque>), 때로 어머니의 연인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소녀로(<쇼팽의 푸른노트>) 소피 마르소는 영화들을 가로지르며 성장했다. 그리고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아자니와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배우” 대열에 자리잡았다.

<브레이브 하트> 이후 소피 마르소는 할리우드에서 활동중이다. 그녀는 “프랑스영화인들의 머리 속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여전히 당돌하게 프랑스영화계를 비판하지만, 할리우드에서의 행보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브레이브 하트> 이후 계속된 시대물 <안나 카레니나>와 <파이어 라이트>는 어머니가 된 소피 마르소의 성숙을 보여주었으나, 박스오피스에서는 실패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미국 배우들과는 또다른, 유럽의 향기를 가진 그녀의 관능미를 놓치지 않는다. <파이어 라이트>의 감독 윌리엄 니콜슨은 소피 마르소가 발목만 보여도 “이 역할은 전혀 섹시하지 않아야 한다”며 옷자락을 발끝까지 끌어내렸다. 그리고 <007 언리미티드>. 소피 마르소는 마침내 자신의 능동성을 되찾은 듯 보인다. 007 시리즈가 항상 여배우들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품었다는 함정만 피해간다면 소피 마르소는 프랑스에서처럼 할리우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안드레이 줄랍스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람들은 나를 줄랍스키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그의 영화 <L'Amour Braque>는 폭력적이었고 심지어 급진적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 영화에 출연했다. 고몽 영화사와의 계약 위반에 대한 배상을 해야 했지만, 사람들이 나를 애완동물 취급하는 것보단 나았다.

스타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소피 마르소가 현실의 나 자신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에게는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복잡하고 약간은 비정상적인 성격을 가진 스타 소피 마르소와 그저 나 자신일 뿐인 소피 마르소.

소설 <라이어>의 작가

문학과 연기는 둘 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다. 그러나 배우에게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어 있다. 소설을 쓸 때 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배우일 때보다 훨씬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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