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 유아식, 시리얼, 즉석식품’이라고 쓰여진 39번 코너의 표지판. 그러나, 진열대에는 생리대만 빼곡히 쌓여 있다. 남양주시 덕소의 어느 대형마트, 형사물 <6월의 일기>의 촬영현장이다. 구름처럼 모여든 아이들은 ‘문정혁’(에릭의 본명)이라고 새겨진 의자의 이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에릭 봤어? 에릭 왔어?”라며 쉴새없이 조잘거린다. 39번 코너에 레일이 깔리고 지미집이 조립된다. 바로 옆 40번 코너에는 조명부들이 키노플로(형광등 모양 조명)에 셀로판지를 덧대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리허설이 시작되고 베테랑 여형사 자영(신은경)이 등장한다. 곧이어 한쪽 구석에서 동욱(문정혁)이 등장한다. 200명이 넘는 여학생들은 현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댄다. 비명과 더불어 휴대폰의 플래시가 나이트클럽의 조명처럼 반짝거린다. 제작부와 조감독의 제지로도 모자라 마트 직원들까지 여학생들을 막아서지만 그들의 열정 앞에선 역부족이다. 쇼핑하던 아주머니들마저 구경꾼 대열에 합세하고,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6월의 일기>는 스릴러다. 여형사 자영은 연쇄살인사건 현장의 사체에서 살인이 예고된 쪽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계속 죽어나간다. 자영은 수사과정에서 고등학교 시절 친구 윤희(김윤진)와 재회한다. “영화에서 네번 마주치는” 자영과 윤희의 촬영분은 이미 마무리되었고, 김윤진은 자신의 촬영분도 끝낸 상태다. 이제부터는 “이 영화가 완성되면 가수보다는 배우로 불릴 것”이라고 후배를 칭찬한 신은경과 “영화는 심적으로는 제일 편하지만 일로는 가장 어렵다”는 문정혁이 보여주는 콤비 플레이가 남은 촬영분량의 대부분이 될 전망이다.
두 시간이 지난 현장은 자정을 넘겼다. 주차장을 배회하며 아쉬워하던 아이들도 모두 떠나고 외부와 차단된 지하 1층 식품 상가에는 스탭, 배우, 50여명의 보조출연자들만 남았다. 리허설 때와는 다른 정적이 흐른다. “카트가 많아 장비 옮기기는 편하겠네”라던 여경보 기사는 스테디캠을 착용하고 뒷걸음질한다. “보조출연자들은 ‘액션’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구호에 움직여주세요”라는 임경수 감독의 지시와 함께 보조출연자들이 스테디캠의 양옆으로 흩어진다. 앞서가는 자영, 생리대를 카트에 내던지며 투덜거리는 동욱이 쇼핑을 거드는 장면이다. 39번 코너를 그들이 벗어날 무렵, 소매치기(오정세)가 동욱의 옆을 쏜살같이 지나간다. 너무 빨리 달린 오정세의 연기를 모니터링하다가 스탭들은 폭소를 터트린다. 동욱이 소매치기를 검거하는 액션의 합을 맞추는 동안 아침이 밝아온다. 50% 정도 촬영을 마친 <6월의 일기>는 11월에 개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