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에프런이 돌아왔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작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의 작가 겸 감독으로서 리얼리티와 통찰이 돋보이는 모던 로맨스를 선보여왔던 그가 1960년대 TV시리즈 <아내는 요술쟁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 <그녀는 요술쟁이>를 내놓았다. 작가로서는 <지금은 통화중>, 감독으로서는 <럭키 넘버> 이후 5년 만의 ‘외출’이다. 이번엔 오랜 분신이었던 귀엽고 수다스러운 뉴요커 멕 라이언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 온 여인’다운 비현실적인 아우라를 지닌 니콜 키드먼과 함께다.
발랄하고 로맨틱한 코미디로 잘 알려져 있지만, 초창기에 노라 에프런은 <제2의 연인> <실크우드>처럼 냉소적이고 신랄한 사회드라마로 주목받았다. 그 작품들을 함께했던 마이크 니콜스의 영향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전반적인 공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여느 작가 출신 감독들처럼 ‘남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망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고 알려졌다. 감독 데뷔작 <행복 찾기>(This is My Life)를 내놓으면서 각본 크레딧에 나란히 오르곤 하는 여동생 델리아와는 좋은 파트너 관계로, ‘할리우드의 브론테 자매’로 비유될 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노라 에프런은 특히 동세대 여성들의 경험과 욕망에 귀를 기울여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요술쟁이 아내가 마법을 쓰지 않기를 강요하던 원작의 설정을, 여성이 힘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로 바꿔 담아내는 소신을 보였다. 그 노라 에프런과 전화로 짧은 만남을 가졌다. 매 질문의 의미를 여러 번 확인한 뒤에 간결하고 단호하게 답변하던 그는, 언어의 오인과 낭비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천생 작가였다.
-무려 5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오래 기다렸다. 재충전을 위한 공백이었나 아님 꾸준히 작품을 진행 중이었나.
=쉬었던 건 아니다. 그동안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릴 희곡 작업도 했고, 차기작 시나리오도 완성했다. 책도 한권 썼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지난 5년 동안 정말 바쁘게 지냈다.
-<그녀는 요술쟁이>를 영화화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름다운 마녀와 보통 남자의 사랑이라는 설정이 당신에게 어떤 매력으로 다가간 것인가.
=원래 마녀라는 존재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많은 여성들이 마법이나 마녀라는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나. 나의 경우 마녀에 관한 영화가 개봉하면 바로 보러 달려갔고, 스스로 마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을 정도였다. (웃음) <아내는 요술쟁이>를 본 세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나도 마녀였으면 좋겠다, 코 한번 찡긋거려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 않았을까. 뜬금없이 아이디어가 튀어나와서 작업한 게 아니라, 평소 관심이 많았다.
-30여년 전 유행한 TV드라마를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는가.
=TV는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매체다. 많은 사람들이 <아내는 요술쟁이> TV시리즈를 시청했고, 아련한 향수를 갖고 있다. 영화를 통해 추억 속의 TV시리즈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화하면서 강조한 테마는 여성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 라는 점이었다. 사랑과 연애, 결혼이란 과정에서 여성이 자신의 영향력을 얼마나 키우고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주제다. 실제로 여성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이 없는 ‘척’을 해야 할 때가 있지 않나. 이 작품의 테마는 여전히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니콜 키드먼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 속의 니콜 키드먼은 이전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캐릭터와도 당신이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여성상과도 거리가 있다.
=사실 니콜 키드먼 때문에 <그녀는 요술쟁이>를 만들고 싶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키드먼은 내가 연출을 결정하기 전부터 영화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자기 역할은 물론 스토리를 제안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게다가 키드먼의 코는 엘리자베스 몽고메리(TV시리즈 <아내는 요술쟁이>의 주연)와 똑같다! 이자벨 역에 완벽한 배우였다. <그녀는 요술쟁이>를 찍을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주인공 이자벨의 순수함을 살려내는 것이었다. 이자벨은 현실사회와 동떨어진 다른 세상에서 온 매우 특별한 캐릭터니까. 그리고 내가 그려내는 모든 인물이 똑같은 성향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어페어 투 리멤버>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했고, 이번에는 1960년대 인기 TV시리즈를 리메이크하는 과정상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옛날 영화에서 미덕을 찾고 응용하길 즐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주인공은 <카사블랑카>를 언급하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선 <어페어 투 리멤버>를, <유브 갓 메일>에선 <대부>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이야기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 책과 영화, TV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다면 현실세계를 그리는 영화에서 그런 식의 대화가 빠진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영화는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자서전의 한 구절을 써내려가는 셈이다.
-당신은 시나리오를 보호하기 위해, 즉 작가로 남기 위해 감독을 하는 거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당신의 시나리오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이 당신 자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꼭 그렇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내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일은 기꺼이 즐기는 편이다.
-당신과 동생 델리아는 전성기 스크루볼코미디를 계승해 세련된 로맨틱코미디를 완성했는데, 스스로 그런 영향과 성과를 어떻게 자평하는가. 동생인 델리아 에프런과의 공동각본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도 궁금하다.
=내 성공에 대해서 만족하냐고? 물론 만족한다. 실패했을 경우보단 훨씬 행복한 게 사실 아닌가. 하지만 언제나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델리아와의 공동각본 작업은 아웃라인을 짜는 것부터 시작한다. 굉장히 세밀한 작업이기에 몇주씩 걸리기도 한다. 머리를 맞대고 수시로 점심을 먹어댄다. (웃음) 일단 아웃라인이 완성되면 본격적인 각본 작업에 들어간다. 물론 쉽지는 않다. 공동작업이란 줄다리기와 같다. 일정 부분을 서로 확보해야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갈 수 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공동작업이란 게 무의미하지 않겠나. 특히 대사를 쓸 때 타인과 함께 작업하는 건 매우 유익하다. 델리아와 나는 함께 자랐고 같은 걸 보고 웃을 수 있는 경험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좋은 파트너다. 그래서 그녀와의 작업이 즐겁다. 때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웃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우정과 사랑 사이의 관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블라인드 데이트, <유브 갓 메일>의 인터넷 채팅 등 세태와 유행따라 당신 영화의 남녀들도 다른 방식의 사랑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존 트래볼타가 사랑을 찾아주는 천사로 출연한 <마이클>과 마법에 비견될 만한 사랑의 힘을 강조한 <그녀는 요술쟁이>를 보면 이즈음 당신은 판타지의 요소, 인연의 초현실적 마력에 부쩍 매혹된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요술쟁이>가 특별히 ‘인연’에 관한 작품이라곤 생각진 않는다. <마이클> 역시 마법과 판타지의 요소를 갖고 있긴 하지만 초현실적인 인연에 관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녀는 요술쟁이>는 오히려 매우 현실적인 사랑, 동화 같은 마법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현실적인 마법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영화가 다루는 사랑도 따지고 보면 너무 비현실적인 것보다는 현실적이고 수긍할 만한 이유로 사랑에 빠지는 남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로 데뷔하던 무렵 잡지에 기고했던 에세이는 날카로운 풍자와 패러디가 특징적이었고, <제2의 연인> <실크우드> 등의 초기작도 냉소적이고 암울한 색채였다. 로맨틱코미디로 시작하진 않았지만 그 장르로 각광받고 오래 매진했던 만큼 이제 다시 다른 장르와 스타일에 대한 갈증도 생겨날 법하다.
=굳이 로맨틱코미디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다른 장르의 영화들도 좋아한다.
-다음 작품 계획은.
=지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문사 기자의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내년쯤 만들려고 하고, 배경은 뉴욕이다. 로맨틱코미디가 아닌 드라마 장르다.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