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절한 금자씨>를 보면서 내내 떠올린 영화가 하나 있다. 물론 <올드보이>나 <복수는 나의 것> 얘긴 아니다. <친절한…>을 보며 이 두 영화를 ‘떠올렸다’ 정도로 말하는 건 큰 실례가 아니겠는가. 최소한 ‘반씩 나눠 보았다’ 정도는 해줘야지.
필자가 떠올렸던 영화는 다름 아닌 <터미네이터3>다. 앞서 나온 두편의 무게를 스스로 이기지 못하여, 또는 그 두편이 남긴 추억을 끝끝내 잊지 못하여, 또는 그 두편에 익숙한 관객의 기억력에 기대는 편이 안전하여, 내내 앞의 두편에서 나왔던 ‘멋진 거 한방’들을 연말총결산 필로 반복하며 ‘이래도 환호하지 않겠는가!’를 목놓아 부르짖던 <터미네이터3>…. 아무런 영문도 사연도 없는 선글라스에 끝없이 집착하며, “쉴 비 백”(She’ll be back), “아임 백”(I’m back) 등의 “알 비 백”(I’ll be back) 짝퉁들을 지치지도 않고 날려주던 아놀드의, 그 지워버리고만 싶었던 비극적인 몰락은 바로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한데 <친절한…>의 경우는 스케일 면에서 오히려 좀더 앞서가고 있다. 앞의 두편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배우가 총출동하여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상대방의 역할을 복습해줬으니까 말이다.
2. <올드보이>가 개봉했을 당시, 또 다른 복수영화 두편이 거의 동시에 개봉했던 것을 기억하시리라. 하나는 <킬 빌>, 그리고 또 하나는 <미스틱 리버>. 사실 필자는 ‘복수 삼부작’보다는 이 당시 벌어졌던 ‘복수 삼파전’쪽에 훨씬 큰 흥미를 느끼는데, 물론 그게 흥행결과 때문인 건 아니다. 유지태, 최민식, 박찬욱, 이 세 거물이 한큐에 얽혀 있었던 데다가, 아줌마 선글라스와 폭탄머리라는 최민식의 획기적 스타일과 간만에 평양교예단을 능가하는 조직력으로 장엄한 만세삼창의 봉화를 드높였던 언론 덕분에 제대로 탄력을 받은 <올드보이>의 흥행 압승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올드보이>나 <킬 빌> 같은 화려한 스타일도 없고, 절벅절벅 피칠갑도 없고, ‘15년간의 감금’이나 ‘4년간의 혼수상태’ 같은 획기적인 설정도 없는 데다가, 골방에서 5년 정도는 묵힌 듯한 칙칙한 화면으로 ‘내고장 새소식’ 정도 규모의 스토리를 소리없이 조용하게 풀어나가는 <미스틱 리버>의 흥행 꼴찌 또한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었고.
하지만, 발밑에 흐르는 깊은 강처럼 조용히 그리고 진득하게 흐르던 이 영화의 내공은, 나머지 두 영화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최소한 <미스틱 리버>가 보여준 복수에 대한 성찰은,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 이상은 넘어서지 못하는 화려한 스타일과 충격적인 센세이션에 의존하는 영화들에선 결코 발견되지 않은 것이었다.
3. 어쨌든 ‘복수 삼부작’은 마무리되었고, 그 출발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열렬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한 것인가. 하지만 이것이 박찬욱 영화의 끝은 아니기에 필자는 <미스틱 리버>와 <터미네이터3>의 중간께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던 <친절한…>이 많이 걱정되었다.
“무조건 예쁜 게 좋아”를 중얼거리며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던 우리의 가련한 금자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