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고독한 영혼들의 러브 스토리,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2005-08-30
글 : 홍성남 (평론가)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에서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첫 번째 대상은 푸른 벽에 붙어 있다가 재빨리 기어올라가는 한 마리 도마뱀이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어딘가에 홀로 뚝 떨어진 듯해 보이는 그것은 아무래도 주인공 겐지(아사노 다다노부)가 읽던 그림책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온 녀석인 것만 같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자신이 자기 종 가운데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더라는 바로 그 도마뱀. 슬슬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지고 심지어는 자신을 괴롭히던 녀석들마저 곁에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품게 되는 세계의 그 단독자는 결국에 이런 결론에 이른다. “같이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삶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원제가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인 <라스트 라이프…>는 그처럼 깜깜한 우주 속을 유영하는 듯 마지막 삶을 살아가는 도마뱀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고 이야기하며 그 ‘도마뱀’들의 초상을 그리는 영화다.

방콕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일본인 청년 겐지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죽음은 항상 그를 비껴가면서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 다리 위에서 몸을 던질 것을 고려하던 겐지가 도서관에서 잠깐 보았던 ‘세일러복’을 입은 젊은 여인 니드와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때, 운명은 겐지가 아니라 비극적이게도 언니 노이(시니트 분야삭)의 눈앞에서 차에 치인 니드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그 즈음, 자살의 수단이 될 수도 있었던 권총으로 겐지는 그의 형을 죽인 야쿠자를 살해하고 만다. 노이와 다시 만난 그는 두구의 시체가 놓인 자신의 아파트로부터 달아나 그녀의 집에서 며칠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자신의 아파트에 시체를 쌓아두게 된 인물의 이야기라는 초반부 설정만 본다면, 혹 <라스트 라이프…>가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이 99년에 만든 <69>의 연장선상에 놓인 영화는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볼 법도 하다. 하지만, 비록 아마도 예전에 야쿠자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주인공 삼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라이프…>가 <69>처럼 피로 얼룩진 살인 게임을 스토리의 주요 진로에 얹어놓을 의지도 없는데다가 그에 어울리는 급박한 리듬을 아예 포기한 영화라는 것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럼 이제 조금만 더 뒤로 걸음을 옮겨서 들여다보자면, 이것은 서로 조화를 이룰 것 같지 않은 두 주인공 남녀가 결국에는 합일의 지점을 찾는다고 하는 로맨틱코미디의 틀을 운용하는 영화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조심스러운 듯 혹은 생각에 잠긴 듯 서두르지 않게 나아가는 이 영화에서 로맨틱코미디 특유의 시끌벅적한 (애정의) 소동과 경쾌한 리듬은 그 강도의 측면에서 거의 최저수위를 보여줄 뿐이다.

이처럼 기존의 영역들에 발을 딛는 듯하면서 그것들과는 분명히 구별을 짓는 방식으로 구축된 세계 속에다가 영화는 고독, 상실, 슬픔,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내재한 겐지와 노이 두 인물에 대한 연구를 묵묵하지만 세심한 필치로 적어놓았다. <라스트 라이프…>는 서로 대칭과 교차가 교묘하게 맞물리는 그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사카를 떠나온 일본인 겐지와 곧 오사카로 떠날 예정인 타이인 노이는 그 행보의 방향만큼이나 서로 만나는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처럼 보인다. 옷, 신발, 책, 주방의 칼 등을 비롯해 자신에게 속한 일체의 것을 정연한 질서 안에 가두고 싶어하는 겐지에게 세상은 규율과 질서가 자리해야 하는 어떤 곳일 것이다(혹 겐지의 자살 충동은 자신마저도 세계의 질서 안에 가지런히 용해하고자 하는 심리의 발로는 아닐까?). 그러니 그에 반해 도무지 청소라고는 되어 있지 않은 집으로 상징되는 노이의 세계는 겐지의 견지에서 봤을 때는 카오스 자체 같은 곳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떤 좌표의 양쪽 끝을 차지하는 듯한 그들에게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건 이 둘 모두가 이젠 주위에 어떤 호불호의 감정이라도 갖게 하는 대상이 없는, 지극히 ‘고독한 영혼’들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이 두 외로운 남녀가 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희미하나마 치유의 기미를 발견하기까지의 도정을 그려나간다.

<라스트 라이프…>는 일종의 러브스토리라고 말하는 게 가능하지만 사랑과 그로 인한 구원을 ‘격렬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사랑이 겐지와 노이를 완전히 구원했다고 주장하지 않고 대신 서로간의 미묘한 감화의 힘을 통해 그들에게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음을 낮은 톤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후반부에서 우리는 애초에 말과 표정이 없었던 겐지에게 조금씩 표정이 생겨나고 쉽게 화를 내곤 했던 노이에게는 차차 평온함이 찾아들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돌아간 자신의 아파트에서 잘 쌓인 책더미를 무너뜨려 보는 겐지에게나, 이전에 부정했던 자기 마을의 아름다움을 수긍하게 되는 노이에게, 이전의 견고한 자신들의 세계는 미세한 균열이 생겨난 것이다.

어찌 보면 길지 않다고도 할 수 있을, 딱 그만큼 인물들이 걸어온 느리지만 섬세한 심리적인 이동을, 영화는 그에 대응하면서도 미려함을 잃지 않고 그러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낼 줄 안다. 거의 항상 부유하는 듯 유려하게 움직이며 인물들과 그 주위를 따라가고 둘러보는 카메라워크, 논리보다는 리듬을 우선시하면서 수시로 상상과 과거와 미래의 단편들을 자유롭게 불러오는 편집, 공간으로 하여금 일종의 캐릭터가 될 수 있게끔 공간들마다 나름의 개성을 새겨넣은 꼼꼼한 미장센, 나른한 듯하면서도 어느샌가 몽롱하게 빨아들이는 힘을 발휘하는 음악 등을 조화롭게 맞물려놓음으로써 영화는 그야말로 하나의 아름다운 ‘우주’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주인공들이 가진 고독과 절망의 무게를 필요 이상으로 미화하지 않으면서 그것들의 무게를 중화해 그려낼 수 있는, 표현력을 가진 우주이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인물들(과 그들의 심적 상태)과 함께 유영할 수 있게 도와주는 흡인력을 가진 우주이다. 무엇보다 이 ‘우주’가 영화의 경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라스트 라이프…>를 두고 무드 혹은 ‘분위기’가 앞장서는 영화라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최선에 가까운 의미에서 그런 영화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대 타이 영화의 선도자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

방콕에 거주하는 영화평론가 척 스티븐스는 미국의 영화잡지 <필름 코멘트> 2002년 11, 12월호에 쓴 기사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 펜엑 라타나루앙을 당대 타이영화의 두 선도자, ‘연꽃 속의 보석’ 같은 존재들이라고 썼다. 비교해보자면, 위라세타쿤이 기존의 영화적 문법에 얽매이지 않은 방식으로 미학적 실험을 감행하는 타이 영화감독의 선두주자라면, 상업영화의 영역 안에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하는 대표적인 타이 영화감독이 라타나루앙이라고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1962년생으로 뉴욕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던 라타나루앙은 우연히 영화감독이 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따라서 그는 자기에게는 영화에 대한 이론이나 노하우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본능이나 감정에 의존해서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지금까지 단 네편의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그의 영화는 변화를 거듭해왔다. 갱스터영화, 로맨틱코미디, 가족스토리, 스릴러 등의 여러 장르에 걸쳐 있던 데뷔작 <펀 바 가라오케>(1997)나 자신의 아파트 앞에 잘못 배달된 돈상자로 인해 시체 치우기에 고심해야 했던 젊은 여인의 이야기를 재기발랄하게 그린 <69>(1999)를 만들 때만 해도 라타나루앙에게는 항상 쿠엔틴 타란티노나 코언 형제의 이름이 언급되곤 했다. 남녀 커플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 운명의 반전을 그린 <몬락 트랜지스터>(2001)로 이전보다는 좀더 소박한 정서를 펼쳐 보인 그는 지금까지의 최고작이랄 수 있는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를 통해서는 대단히 모던한 감성의 소유자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라타나루앙은 자기가 우디 앨런을 좋아하는 것은 앨런이란 이가 걸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경로를 보면 라타나루앙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면서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최고’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는 주목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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