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틀]
<마더> 인생의 황혼기에 찾은 사랑
2005-08-30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영화 <마더>의 간단한 시놉시스는 ‘남편을 잃은 노부인이 딸의 연인과 불륜 관계를 갖는다’ 라고 요약할 수 있다. 벌써부터 영화 속에서 벌어질 그렇고 그런 상황과 장면들이 그려지지 않는가? 하지만, <마더>는 통속적인 불륜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띄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마음 한 구석에 하나씩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남편을 잃는 주인공 메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아들 부부는 가정생활보다는 커리어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고, 손자와 손녀는 할머니 메이를 귀찮아한다. 메이와 위험한 관계에 빠지게 되는 대런은 자폐증 환자인 아들과 애정이 없는 아내와의 관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유일하게 메이와 소통하는가 싶었던 딸 폴라는 어머니가 자신을 존중해준 적이 전혀 없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상황이 이러하니 영화 도입부의 만찬에서 너무나 행복하게 묘사되었던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 직후 공중분해되고, 그 사이에서 외톨이가 된, 평생 희생만을 강요당한 채 살아 온 어머니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알 수 없는 신세가 된다. 바로 그 때 마음속으로 들어온 사람이 하필이면 딸의 연인이었던 대런. 하지만 그 잠시 동안의 달콤함과 사실을 알게 된 딸과의 뒤이은 갈등은 이제 늙어 스러져가는 것만 남은 줄 알았던 메이를 다시 한 번 성장시킨다.

결국 <마더>는 파편화된 현대 가족의 우울한 자화상이자 자기애에 대한 각성을 통해 할머니에서 여성으로 거듭나는 존재에 관한 감동적인 드라마다. 파격적인 설정은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메이와 대런의 불륜 묘사조차 처음으로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여자의 심리가 깊이 반영되어 있어 그다지 밉지 않다. 소재와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점, 그리고 그 방식에 따라 영화의 만듦새가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점, 바로 그것이 <마더>가 성공적으로 보여 준 미덕이다.

우리에게는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 <노팅 힐>로 잘 알려진 로저 미셸 감독은 그 대표작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현대 핵가족의 어두운 단면을 담담하게 그렸다. 이러한 담담함에 생기 있는 감정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배우들이다. 전형적인 60대 할머니의 모습에서 자기애를 깨닫는 진취적인 여성으로 변모하는 메이 역의 앤 레이드가 특히 뛰어나다. 어머니와 대립하는 딸 폴라 역의 캐스린 브래드쇼, 대런 역의 대니얼 크레이그도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다.

소박한 영화, 소박한 DVD

격렬한 감정이 흐르는 영화의 내용과는 반대로 화면의 구성은 소박하고 여백이 많이 눈에 띈다. 밝은 낮 장면은 비교적 선명한 영상을 보여주지만, 밤 장면이나 실내 장면으로 넘어가면 질감이 거칠어지고 배경의 지글거림이 다소 거슬린다. 돌비 디지털 사운드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프론트 채널만을 울리지만 주인공이 거리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장면에서 의외로 강하게 들리는 거리의 소음은 등장인물의 상대적인 고독감을 훌륭하게 강조해주는 등 설정 음향의 효과는 우수하다.

부록은 출연진, 제작진의 인터뷰와 영국, 미국, 한국판 예고편을 각각 하나 씩 담았다. 인터뷰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답변을 통해 배우나 감독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알 수 있다. 관객 각자의 의견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앤 레이드 인터뷰.
대니얼 크레이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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