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치 않은 영화기자의 특권 가운데 하나는 해외의 유명배우를 실제로 만나볼 기회가 있다는 거다. 사실 만난다고 해봤자 북적대는 기자회견장이나 대여섯명의 기자들과 함께 둥근 탁자에서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벤 에플랙을 만났을 때는 ‘배우가 저렇게 얼굴이 클 수도 있나’ 실망했던 반면 지난해 <스텝포드 와이프> 뉴욕 시사 때 본 키드먼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만들어놓은 인형이나 조각상처럼 보였다. 이 영화에서 잘 나가는 방송회사 중역에서 잘려 본의 아니게 전업주부가 된 여자의 역할을 맡았던 키드먼은 “집안 일도 하는가” 하는 어떤 기자의 바보 같은 질문에 “쿠키는 좀 굽지만 바느질은 잘 못해요, 호호” 웃으며 답했다. 이 대답은 그가 어떤 영화에서 했던 대사보다도 어색하게 들렸다.
사실 개인적으로 니콜 키드먼은 너무 완벽해서 존경스럽기는 하지만 차가운 얼음공주 같은 느낌의 배우다. 존경스러운 건 외모 뿐 아니라 그의 영화 이력도 포함된다. <물랭루즈>같은 화려한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디 아더스> <디 아워스> 같이 크지 않지만 ‘뽀대’나는 작가 영화들에 출연하는 것도 그렇고 역할 역시 우아한 귀족(<여인의 초상>)에서 잔혹한 야심녀(<투다이포>), 불온하고 관능적인 여성(<휴먼 스테인>)까지 다채로우면서도 늘 ‘예쁜 짓’에서 벗어나 있는 캐릭터들이라 멋있어 보인다. 게다가 제인 캠피언 감독의 여성 영화 <인 더 컷>에서는 프로듀서까지 맡아 근사한 여성 드림팀을 이루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그녀는 요술쟁이>에서 ‘예쁜 짓’에 처음 ‘도전’했다.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을 해본 적은 없으니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가 여배우들의 가장 손쉬운 선택이라 할지라고 그에게는 도전인 셈이다. 결과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신통치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도 밋밋하지만 “나 (마술사가 아닌) 평범한 여자로 사랑받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대사나 그저 그런 남자에게 실연당하고 괴로워하는 ‘평범한’ 모습이 너무나 키드먼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예쁘고 완벽한 것도 이처럼 때로는 짐이 된다.
바꿔 생각하면 키드먼의 실패는 이미 예정된 결말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이 <그녀는 요술쟁이>보다 <그녀는 욕심쟁이>가 더 어울릴 것처럼 보였다. 영화와는 무관하게 니콜 키드먼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이 수려한 외모와 섬세한 연기력 덕에 흥행감독과 작가감독들 모두가 원하는 배우가 왜 굳이 로맨틱 코미디의 영역에까지 연기제국의 영토를 확대하려고 할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영화를 통해 귀여움, 평범함 이라는 2% 부족한 부분을 기어이 채우고 싶어하는 키드먼이 ‘그녀는 욕심쟁이’처럼 보인 게 나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게다가 한 인터뷰에 나와서는 자신도 157㎝의 아담한 키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서 작은 키가 고민인 수많은 평범녀들의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이 예쁜 척하는 걸 보는 게 측은하다면 예쁜 사람이 굳이 평범하다고 우기는 거야말로 진짜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기분 나쁠 일이다. 키드먼 양. 이제 평범함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남들로서는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아름답고 우아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시는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