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퀴어 멜로 <동백꽃> 이송희일 감독
2005-09-05
글·사진 : 전정윤 (한겨레 기자)
“동성애 세 풍경으로 인권운동 10년 돌아봤죠”
이송희일 감독

<언제나 일요일같이>(1998), <슈가힐>(2000), <굿로맨스>(2001) …. 스스로 성적소수자임을 밝힌 뒤 지난 7년 동안 섹슈얼리티 문제를 화두로 다양한 독립영화를 만들며 국내외에서 두루 호평을 받았던 이송희일(34) 감독이 또다른 퀴어 멜로 <동백꽃>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16일 씨지브이(CGV) 서울 강변·상암, 부산 서면 독립영화관과 서울 인사동 필름포럼에서 개봉하는 이 영화는 한국 남성동성애자 인권단체 ‘친구사이’ 결성 10돌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최진성, 소준문 감독과 함께 이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고, 프로듀서 일까지 겸한 이송희일 감독을 만났다.

1500만원으로 한달만에 뚝딱, 동백섬 보길도 배경으로 3인3색 작품 옴니버스로 엮어

이송희일 감독은 “‘친구사이’는 한국의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궤를 같이한 단체”라며 “10주년을 기념·정리하는 것은 물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영화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친구사이가 활동해 온 지난 10년 동안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 또 인터넷의 비약적인 발달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동성애자들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등 큰 변화가 있었고 이를 반영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게이포털사이트 ‘㈜딴생각’에서 투자받은 1200만원에 친구사이 회원들의 모금과 자비를 합쳐 1500만원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이 예산으로는 도저히 못하겠다’며 프로듀서가 도망갔어요.(웃음)”

우여곡절 끝에 프로듀서까지 겸하게 된 이송희일 감독에게 남은 과제는 동성애자 감독들을 섭외해 영화를 시작하는 것. “저말고는 커밍아웃한 감독이 없는 상황에서 동성애자 감독을 설득해 영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결국 친구사이 회원이면서 제 단편영화 연출부 출신이었던 소준문 감독과 스스로는 이성애자이지만 평소 퀴어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최진성 감독과 함께 영화를 찍게 됐지요.”

초저예산을 가지고 준비기간 2주, 촬영 1주, 편집 1주 등 딱 한달 만에 만들어진 <동백꽃>은 <김추자>(최진성), <떠다니는, 섬>(소준문), <동백아가씨>(이송희일) 등 세 편의 에피소드를 순차적으로 엮어 만든 영화다. 뮤지컬적인 형식이 결합된 <김추자>는 9년 만에 다시 만나 보길도 여행을 떠난 게이 커플 춘하·왕근과 왕근이 결혼해 낳은 딸 추자의 기묘한 관계를 보여준다. <떠다니는, 섬>은 보길도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한 게이 커플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로 감정을 정리하고 이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동백아가씨>는 자살한 남편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안 아내가 남편의 애인을 만나기 위해 역시 보길도를 찾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송희일 감독은 “10주년 잔치이니만큼 혼자 찍는 것보다는 여러 감독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어설픈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는 것보다 퀴어 멜로로 접근하는 게 외부와 소통하는 데도 더 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물리적 공간을 한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며 보길도는 동백꽃으로 유명한 섬이고, 붉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개화한 모습 그대로 지는 신파적인 느낌이 신파 퀴어 멜로를 지향하는 이 프로젝트에 맞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퀴어영화만 찍다 보니 낙후되는 느낌이 들어 이제 딱 한편만 더 찍고 앞으로 10년 동안 퀴어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는 이송희일 감독은 현재 그 ‘딱 한편’, <야만의 밤>(청년필름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장편 상업영화지만 1억원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질 <야만의 밤>은 계급이 다른 남성 동성애자들의 사랑과 계급차에서 벌어지는 폭력 문제를 다룰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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