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환경영화제가 “CO2를 잡아라”라는 기치 아래 두 번째 축제의 막을 올린다. 9월8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펼쳐지는 제2회 서울환경영화제(이하 GFFIS)는 서울 씨네큐브, 정동 스타식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34개국 총 114편의 작품을 상영한다. 지난해 국내 경선으로 제한했던 경쟁부문의 문호를 이번에는 해외작품에도 개방했다.
먼저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신작 <길>이 개막작으로 세계 최초로 상영된다. 환경재단이 사전제작을 지원한 <길>은 스틸사진과 다큐멘터리를 융합한 로드무비다. 금호미술관에서 영화제의 부대행사로 열리고 있는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사진전에 전시된 스틸사진들이 영화 초반 관현악과 함께 화면에 보여진다. 정지된 화면에 카메라의 움직임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프레임의 이중구조를 만들어낸다. 드넓은 자연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길 위의 양떼들을 기점으로 좁은 공간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키아로스타미의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그의 다른 영화에 나타난 풍경을 설명하듯이 “나는 길 위에 홀로 서 있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키아로스타미는 말한다. 그리고 점묘화 같은 길의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조작없는 리얼리즘으로 환상성을 획득하는 키아로스타미의 미학은 여전하다. 설원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의 이미지들은 공간의 입체감을 교란시키고, 일상을 환상으로 바꿔놓는다. <길>에서 프레임의 안과 밖은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 마찬가지로 피사체와 촬영자, 영화의 안과 밖의 경계도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한 마리의 개를 비추며 <길>이 끝나는 엔딩도 기존의 영화문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환경영화제가 테마전으로 내세운 주제는 ‘핵’이다. 메리앤 드레오의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인류 역사상 최악으로 기억되는 체르노빌 핵 누출사고의 뒤안길을 찾아간다. 1986년 4월26일에 발생한 사고 이후 16년이 흘렀다. 1만3천명의 사망자와 60만명의 피해자를 낸 사고의 상흔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졌다. 2002년 체르노빌 아이들 프로젝트로 벨로루시에서 치료와 원조를 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간다. 밍스크의 병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심장질환에 시달린다. 심장전문의 노빅은 13명을 수술했지만 여전히 수술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올해만 300명에 이른다. 대기자 명단의 아이들 대부분이 2∼5년 사이에 죽어나가는 현실이 엄존한다. 추이 슈신의 <안녕하세요, 꽁랴오>는 핵 발전소 건설을 저지하려는 지역주민의 ‘불타는 연대기’를 기록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그들에 대한 위협은 계속된다. 참소리가 제작한 <광장을 지키는 사람들>은 국내 핵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2003년 여름을 달군 부안 핵폐기장 사건에 대해 살아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 작품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뉴커런츠 부문인 ‘널리 보는 세상’ 섹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총 40편의 환경영화가 포진하고 있다. 마이클 코트의 <쉽브레이커즈>는 인도 알랭에 있는 ‘배들의 해상묘지 혹은 폐기장’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버려진 배로 먹고살아야 하는 알랭 사람들의 가혹한 운명을 크레인과 폐선을 배경으로 잡아낸다. 노동자로 일하는 검은 손의 주인공과 자신의 나이도 모른 채 찻집에서 일하는 어린 고아의 모습은 쓸쓸함을 자아낸다. 국제법은 강제성이 없고, 인도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만 현실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제시카 아이즈너의 <머핀 맨>은 ‘유행성 비만’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SF와 블랙코미디를 통해 유쾌한 필치로 풀어내고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 ‘바디샵’을 만든 아니타 로딕의 사적 다큐멘터리와 월마트가 뉴잉글랜드 소규모 마을의 생활 환경을 초토화시키는 과정을 다룬 <월마트와의 한판 승부>도 일상과 환경이라는 주제를 잘 연결하고 있다.
국제경선 부문에는 지난해 인권영화상을 수상했던 권우정의 <농가일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충남 부여에 사는 농부 이근혁씨의 삶을 1년 동안 따라잡은 이 영화는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도 해야 하는 농촌 현실의 이중고를 잘 보여준다. 농사, 가족사, 사회사가 촘촘하게 맞물린 <농가일기>에서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주인공의 고백은 서늘하다. 최민근의 <똥의 힘>은 한국, 인도, 영국을 오가며 똥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빠른 카메라워크와 타이포그래피와 자막을 비디오아트처럼 사용하며 발랄하게 전개한다. 개별 인터뷰들을 파편화시키고 빠른 리듬의 편집으로 초반부의 호기심을 ‘똥의 재활용’이라는 주제의식으로 끌어들이는 전개가 돋보인다. 똥을 물로 치우는 편의주의적 화장실 문화가 물부족이라는 근본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이외에도 자라나는 유소년들을 위한 섹션인 <지구의 아이들>에는 안드레아스 히카데의 애니메이션과 노동석 감독의 단편들이 준비되어 있다. 국내 TV다큐멘터리 5편을 선보이는 특별상영과 사전제작지원작인 애니메이션 <범, 하룻강아지 무서운 줄 모르다>와 고등학생 감독 김태용이 만든 <우리들은>도 주목할만한 할 작품이다.
루이지애나의 기록자
회고전 열리는 레스 블랭크 감독
제2회 서울환경영화제가 회고전으로 선택한 작가는 레스 블랭크 감독이다. 레스 블랭크는 1960년대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문화와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가로 유명하다. 일명 ‘케이준’ 문화로 불리며 재즈의 발상지이기도 한 루이지애나주의 문화를 추적하는 그의 작품들은 민족지 영화의 성격을 갖는다. 그의 영화들은 루이지애나주의 문화적 특색을 그대로 반영하듯 음악과 음식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패스트푸드가 만연한 미국사회에서 레스 블랭크가 담아낸 독특한 문화적 지형은 일종의 대안 문화로 자리매김한다. <클리프톤 셰니에의 삶>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재즈 뮤지션 클리프톤의 생활을 루이지애나의 풍경과 교차시킨 다큐멘터리다. 루이지애나주 라파예트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미국 남부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흑인이라는 중층적인 문화 요소를 뮤직비디오와 다큐멘터리를 뒤섞은 스타일로 보여준다. 음악의 톤에 따라 카메라워크도 달라진다. 로드쇼를 떠난 클리프톤과 클리블랜드 형제의 삶을 다루면서 영화는 “모든 날들은 새롭다”며 희망차게 이야기한다. <구두를 먹는 베르너 헤어초크>는 UC극장에서 자신의 구두를 먹는 공연을 위해 미국으로 온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을 그리고 있다. 에롤 모리스의 <천국의 문>의 상영과 함께 헤어초크는 구두를 요리하여 먹는 기행을 선보인다. 헤어초크의 퍼포먼스는 <황금광 시대>에서 채플린이 구두를 먹는 장면과 겹쳐진다. 레스 블랭크는 베르너 헤어초크의 <위대한 피츠카랄도>의 메이킹 필름인 <꿈의 무게>를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