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DNA는 영혼을 잠식한다, <가타카>
2005-09-08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EBS 9월10일(토) 밤 11시40분

SF영화는 때로, 미래사회의 지형도를 세밀하게 그려 보인다. 최근 <아일랜드>가 그랬듯 <가타카> 역시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지만 그리 밝은 미래는 아닌 것 같다. 유전자 조작이라는 첨단의 소재를 거느린 영화 <가타카>는 디스토피아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SF영화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원래 영화는 제작 당시 ‘여덟 번째 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신의 영역에 침범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빗댄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미래, DNA 공학은 사람들이 지능과 완벽에 가까운 육체를 갖고 태어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자연적으로 출생한 사람들은 쓸모없는 ‘열등인’으로 낙인찍힌다. 빈센트 프리맨은 32살까지만 살 수 있는 심장병을 앓고 있다. 그는 ‘우등인’ 남동생 안톤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나 수영시합에서 안톤의 생명을 구해줌으로써 열등감은 사라진다. 하위계급에 속한 빈센트가 엘리트들의 집합소인 가타카 그룹에서 구할 수 있는 직업은 청소부다. 빈센트는 가타카의 우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우주여행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다.

<가타카>의 갈등 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영화 속 배경은 이렇다. 우성인자를 보유한 사람이 사회의 주요 부문을 장악하고 있고, 열성인자를 보유한 사람은 하층민의 삶을 살아간다. 개인의 노력에 의한 계층 상승 같은 것은 불가능하고, 다른 계급간의 사랑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렇듯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신종 계급사회에서 자신이 이룰 수 없는 꿈을 갖게 된 주인공 빈센트는 하나의 결단을 내린다. 그는 제롬이라는 수영선수와 신원을 맞바꾸는 거래를 하는 것이다. 빈센트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빈센트의 감춰진 신분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추격전이 얽혀든다. <가타카>가 다른 할리우드영화와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수려한 미장센의 공로가 크다.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십계> 등에서 함께 작업했던 슬라보미르 이지악이 촬영감독으로 참여했으며 그는 <가타카>에서 녹색과 푸른색 계열 필터를 과감하게 사용함으로써 화면 곳곳에 우아함을 새겨놓고 있다.

프로덕션디자이너로 참여한 얀 로엘프의 작업 역시 눈에 띈다. <가타카>의 감독인 앤드루 니콜은 <트루먼 쇼>의 각본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실과 환상, 실제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에 대해 많은 관심을 지니는 앤드루 니콜 감독은 알 파치노가 주연한 <시몬>을 만들기도 했다. <가타카>는 인간의 정신은 과학의 힘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는 것이라는 결말로 향한다. 그리고 미래사회에 저항하는 빈센트의 행동에 관객이 많은 부분 공감하도록 만든다. <가타카> 이후 앤드루 니콜 감독의 행보가 늘 기대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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