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을 꿈꾸는 자들이여, 행동하라
정성일 평론가라기보단 팬클럽으로 나왔다. 질문이 팬클럽스럽다 하더라도(웃음) 이해해달라. 촌스럽게 시작하겠다. 서울 방문은 공식적으로 처음인데. 인천공항에 도착해, 서울 풍경을 보면서 받은 느낌이 궁금하다.
허우샤오시엔 아주 긴 다리들(웃음)…. 되게 많던데. 세상에 이런 물질적 세계가 끝없이 팽창된다면 그건 좋은 일인 걸까. 관객이 필기하는 걸 보면서 뭔가를 찾으려는 표정을 봤다.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폭소) 컴퓨터, 문자, 이미지… 너무 많은 관념들이 있어서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어렸을 때 오빠가 엄마의 감시를 받으면서 숙제를 하지 않나. 여동생은 옆에서 뛰어놀고 말이다. 하지만 오빠는 하나도 외우지 못하고 여동생은 다 외운다. 왜냐하면 여동생은 놀면서 자연스레 받아들인 거니까.
정성일 에드워드 양과 친했지만 두 사람의 영화는 매우 다르다. 친구로서가 아니라 감독으로서 그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는지.
허우샤오시엔 사람들은 다 다르다. 물론, 영화도 다르겠지. 에드워드 양은 대만의 유명한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가서 컴퓨터를 배우고 그 분야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35살이 되던 해에 영화를 하고 싶어 LA엘 갔다. 하지만 수업을 많이 듣지는 못했다. 선생이 자기보다도 못한 것 같으니까. (웃음) 그의 영화는 구조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스토리가 발전함에 따라 화면의 구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는 타이베이서 자랐고 난 시골서 자랐다. 난 동네 양아치로 자라서 논리성은 떨어진다.
정성일 1975년에 장제스 총통이 서거했다. 한국의 박정희 서거와 같은 일이다. 당신은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주했는데, 외성인과 내성인 사이의 문제는 당신 영화에서 중요한 테마다.
허우샤오시엔 폴리틱(정치), 허?(웃음) 난 열정적인 사람인데 내 영화는 갑자기 왜 슬퍼지는 걸까. 아버지는 오래 아프셨고 폐병이 있어 가까이 갈 수 없었고 요양원에 묵어야 했다. 엄마는 우울해서 정신병원에 가기도 했다. 광둥에서 대만으로 오면서 곧 중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으니까. 엄마는 대만에 친척이 하나도 없었다. 내 영화에는 나도 모르게 그런 정서가 드러난다. 나도 모르게 <동년왕사>를 찍으면서 대만 사람들이 나랑 똑같지 않구나 하는 걸 느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외성인이냐 내성인이냐가 아니라 인간, 그리고 그 관계였다. <비정성시>를 찍으면서 나는 잡혀갈 수도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체제와 정부쪽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자유주의자, 그것도 왼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정성일 당신의 많은 작품이 자서전적인 형식이다.
허우샤오시엔 자서전이라기보다 처음 찍을 때는 나에 대해 다시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두 번째 만났을 때, 계속 다른 느낌이다. 사람을 알게 되는 건, 쌓여가는 거라고 볼 수 있다. 한 사람을 과거부터 계속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따라가게 되었는데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인물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거다. 스토리나 구조가 부족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인물이며, 또한 공간이다.
정성일 당신 영화에서 사람들은 줄기차게 식탁에 모여 밥을 먹는다.
허우샤오시엔 오랫동안 밥먹는 걸 찍으니까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 식탁에서 밥먹는 장면은 가족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다. <비정성시> 마지막에서도 계속 밥을 먹는다. 역사가 변하고 더 큰 어려움이 와도, 생활의 사소함, 그러니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상생활보다 크지는 못하다.
관객 연기를 그만둔 이유, 그리고 전문 연기 배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허우샤오시엔 연기란 남을 위한 거다. 감독은 내가 중심이 되어 할 수 있다. 배우는 도와주는 거다. 연기해달라고 주문이 왔지만 내가 재미가 없었다. 옛날 감독들은 또 얼마나 무서웠는지. 전문배우도 나름대로 감독처럼 창작을 하기는 한다. 양조위는 <아비정전>의 도박장면 하나를 위해 전문 도박사를 찾아갔다. 거기서 그들의 손이 아름답다는 걸 발견했다. 도박할 때는 손동작이 중요하니 손을 관리해야 한다. 양조위는 매번 현장에서 손톱을 정리했다. (웃음) 이런 걸 통해 도박사의 심리, 역할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이런 일은 드물지. (웃음)
정성일 감독을 꿈꾸는 이를 위해 격려의 말씀을 부탁한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되려면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행동이 있어야 한다. 현장에 들어가보고 시나리오를 써보고 그리고 느끼고, 관찰해야 한다. 행동이 제일 중요하다. 남의 말은 소용없다. 영화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이렇게 찍힐 수도 저렇게 찍힐 수도 있다. <솔로몬의 반지>라는 책을 보면서 인간의 행위에 대해 배운 바가 있다. 더 많은 것을 주의깊게 보고 관찰하라. 더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무의식적으로 스며들게 하라. 인간을 사랑하라. 이 음악을 저 장면에 써야지, 저 배우를 여기에 써야지 하는 태도는 못마땅하다. 해면체처럼 꾸준히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 순간 다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