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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소외감을 느끼시나요?
2005-09-14
글 : ibuti

<권태>를 처음 보았을 때 누군가의 그림이 머리 속에서 가물거렸다. 몇 년 뒤, 생폴의 식당에서 벽화를 본 순간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페르낭 레제는 그렇게 기억 속에 남게 됐다. 둥근 육체의 온화함과 무표정한 얼굴의 싸늘함이 조합될 때 나오는 기이함과 소외감. 레제의 그림과 영화 <권태>는 그런 느낌이었다.

소외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1960년대 전후, 이탈리아의 대표적 작가 두 사람은 권태와 소외를 화두로 삼아 책을 쓴다. 이탈로 칼비노는 <나무 위의 남작>의 서두에서 ‘명상에 잠겨봐야 결국은 무시무시한 권태와 무기력에 도달할 뿐’이라고 말하며,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권태>의 프롤로그에 ‘권태는 소통 부재,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무기력함’이라고 쓴다. 세드릭 칸이 모라비아의 <권태>를 영화화한 동명의 작품에는 그런 느낌, 그런 생각이 박혀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가에서 철학강사로, 이웃 화가는 우연히 마주친 인물로 바뀌었으나 주인공과 어린 소녀의 관계는 거의 그대로다. 욕망에 사로잡힌 30대 남자는 칼날을 사이에 둔 채 어린 소녀를 끌어안고 있는 꼴이어서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주체할 수 없다. 다행히 그는 절망의 끝에서 단념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택하지만, 이후 그의 영혼이 구원받을 것인지, 그의 삶이 힘을 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소외와 그렇게 오랫동안 싸워오면서도 구하지 못한 답은 결국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무삭제로 출시된 <권태> DVD의 부록으로는 출연진 소개와 예고편 모음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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