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작품을 영화화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9월 16일 국내 공개된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영상미가 정평을 받고 있는 팀 버튼 감독과 역시 자신만의 흉내낼 수 없는 연기 세계를 확립한 조니 뎁이 <슬리피 할로우> 이후 다시 공동 작업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지난 여름 미국에서 개봉 즉시 5,538만달러의 놀라운 흥행 수입을 거두면서 유난히 불황이 심했던 할리우드 극장가에 잠시나마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최근 국내에서 개최된 시사회에서도 폭발적인 관객 반응을 기록하는 등, 올 추석 대목을 노린 외화들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원작이 된 로알드 달의 동화는 이미 1971년에 영화로 한 번 만들어져 서구권에서 큰 인기를 누려왔고, 국내에도 지난 2001년 <초콜렛 천국>이라는 제목으로 DVD가 출시된 바 있다. <초콜렛 천국>과 <찰리와 초콜릿 공장> 모두 원작에 상당히 충실한 편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다양한 차이점도 갖고 있는데, 이에 DVD 토픽에서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개봉에 호응하여 원작 동화와 이들 두 영화의 이모저모를 비교해 보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이나 오리지널 영화를 미리 읽고 본다면 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관람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연휴 준비로 바빠 시간이 촉박하다면 이 기사를 통해 속성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윌리 웡카 : 71년작 <초콜렛 천국>에서는 <제작자들> <실버 스트릭> <영 프랑켄슈타인> 등의 작품에서 주로 코믹한 이미지를 선보였던 진 와일더가 윌리 웡카를 연기했다. 와일더의 웡카는 활달하고 때로는 정중한 전통적인 영국 신사 이미지에 가깝다. 그에 비해 버루카나 마이크의 황당한 질문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타박하는 조니 뎁의 웡카는 보다 예민하고 까다로우며 속세와의 접촉이 오랫동안 없었던 캐릭터가 보다 강조되어 있는 것이 특징. 마치 에드워드 가위손의 유쾌상쾌 버전을 보는 듯하다.
웡카의 첫 등장 장면은 두 영화 모두 원작과 다르다. 와일더의 웡카는 처음에 지팡이를 짚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척 하다가 군중들 앞까지 다가와 땅을 한 바퀴 구른 다음 유머러스하게 두 다리로 서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반면 뎁의 웡카는 놀이동산 같은 인형들의 공연을 선보이다가 과열되어 불에 타 일그러지는 인형의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등 팀 버튼 영화다운 악취미 개그를 살렸다. 황당해진 군중들 앞에 나타나 ‘재밌지? 재밌어?’라며 묻는 웡카의 모습도 크게 다르다. 참고로 와일더는 전술한 퍼포먼스를 영화 출연 조건으로 명시하기도 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두 웡카들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극중의 아버지에 관한 묘사다. 71년판에는 찰리의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대신, 결말에서 웡카와 찰리의 포옹 장면으로 웡카가 찰리의 아버지를 대신한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버튼판에서는 찰리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대신, 원작에도 없는 웡카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와 관련된 플래쉬백이 삽입됨으로써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문제를 보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가족이라는 존재를 초콜릿 공장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 찰리의 영향을 받아, 결말에서 웡카가 아버지와 화해(또는 이해)한다는 전개는 버튼의 전작 <빅 피쉬>와도 연결된다.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던 웡카가 극중 ‘부모’라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설정도 추가되었다.
찰리 : 71년작의 찰리는 미국 출신의 피터 오스트럼이 연기했는데, 이것이 그의 유일한 배우로서의 경력이다. 오스트럼은 이 영화 이후 계속 연기를 하지 않았고, 지금은 평범한 수의사로서 살고 있다. <초콜렛 천국> DVD의 메이킹 다큐멘터리에서 중년의 어른이 된 그의 모습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
버튼판의 찰리를 연기한 배우는 영국 출신의 프레디 하이모어. 웡카 역의 조니 뎁과는 이미 2004년작 <네버랜드를 찾아서>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데, 전 세계의 많은 관객들이 그랬듯 조니 뎁도 이 꼬마 배우의 놀라운 연기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때문에 이번 작품에 하이모어를 강력 추천한 사람이 뎁이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제작 일화가 되었다.
71년작과 버튼판과의 차이는 찰리의 황금 티켓에 대한 태도. 71년작의 찰리는 가난한 생활로 인해 항상 축 늘어져 있고, 황금 티켓에 대한 강한 욕구를 표현한다. 당첨이 되지 않았을 때 역시 크게 낙담하는 등 약간은 철이 없이 보이는 어린이다운 모습이다. 반면 버튼판의 찰리는 힘든 생활에도 전혀 때가 묻어 있지 않고, 감정 표현도 상당히 절제된 모습을 보인다. 배우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속이 깊은 어린이로 그렸지만, 어쩐지 ‘애늙은이’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이와 같은 차이는 결말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71년작에서는 웡카가 공장을 물려주겠다는 제의에 찰리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동의하지만, 버튼판에서는 가족과 함께할 수 없다면 공장도 필요 없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가족애, 부성애를 비교적 담백하게 묘사한 71년작과 그것을 중심적인 주제로 다룬 버튼판의 차이이기도 하다.
초콜릿 방 : 원작에서 독자들을 가장 매료시켰던 부분이 바로 초콜릿 폭포와 강이 흐르고 방 안의 모든 것이 초콜릿과 사탕 등으로 이루어진 '초콜릿 방'. 이것은 영화판에서도 주된 비주얼로 활용되었는데, 71년판과 버튼판 모두 당시와 현재의 영상 기술로 가능한 최대한을 선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71년판의 초콜릿 방은 2005년의 관점에서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역시 많은 공이 들어간 화려한 세트임은 분명하다. 버튼판의 초콜릿 방은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던 절묘한 곡선 언덕이 인상적이다. 두 작품 모두 원작의 묘사를 바탕으로 하여 나름대로 충실하게 화면에 재현하였는데, 각각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가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움파룸파 : 배우 딥 로이가 모든 움파룸파 사람들을 연기한 버튼판과는 달리 71년판에서는 여러 명의 배우들이 등장한다. 따라서 한 화면에 많아야 5~6명이 나올 수 있었던 71년판과는 달리, 버튼판에서는 시각효과를 통해 똑같은 딥 로이를 무한복제하여 수십~수백명을 한 화면에 보여준다. 대신 로이는 같은 동작을 여러 번 연기함으로써 군무 장면을 보다 자연스럽게 처리했다.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을 연상시키는 움파룸파의 원작 설정은 1973년의 재판에서 금발의 백인으로 변경되었는데 버튼판에서는 딥 로이가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점과 움파룸파를 정글에서 발견한다는 묘사 등을 통해 변경 이전의 설정에 좀 더 가깝게 만들었다.
극중 움파룸파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71년판의 경우 ‘움파룸파 둠파디두’라는 동일한 후렴구와 멜로디에 가사만 바꾸어 사용한 반면, 버튼판에서는 어린이들에 따라 헤비메탈, 디스코 등의 다양한 음악 장르를 활용한 별도의 곡들이 나온다.
못된 아이들의 최후 : 버루카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71년작이나 버튼판이나 원작과 동일하다. 버루카의 경우 71년판에서는 원작과 버튼판의 다람쥐 대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등장하며, 버루카는 거위를 달라며 황금알 감별기에 올라갔다가 ‘불합격’ 처리되는 바람에 폐기물 처리장으로 떨어지고 만다.
또한 원작과 버튼판에는 만신창이가 된 아이들과 가족들이 공장을 나서는 장면이 있으나, 71년판에는 생략되었으며, 원작에 버금가는 잔혹하고 단호한 노래 가사들로 인해 아이들이 정말로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그 외의 차이점 : 원작에는 황금 티켓을 차지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진풍경이 서술되어 있다. 황금 티켓의 위치를 알려주는 컴퓨터라든가 금속탐지기, 가짜 티켓에 얽힌 사기 등인데, 이러한 묘사들은 작품의 풍자성을 더욱 강조해 준다. 71년판에는 이러한 묘사들이 중간 중간 콩트 식으로 삽입되어 있지만, 버튼판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부분은 71년판이 원작에 보다 충실하며, 원작의 향기가 영상으로 옮겨지면서 휘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까다로운 팬들에게는 비교 또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71년판의 경우 이러한 소동 장면들이 극의 흐름을 종종 끊어 놓는 부작용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71년판이 거의 완벽한 뮤지컬로서 8곡의 가창 시퀀스가 등장하지만, 버튼판은 못된 아이들이 하나씩 사라져갈 때마다 나오는 움파룸파 사람들의 노래만 4곡 등장한다. 71년판에는 황금 티켓 때문에 실의에 빠진 찰리를 응원하는 엄마의 노래 “Cheer up, Charlie”나 도입부에서 사탕가게 주인 아저씨가 부르는 “The Candy Man”, 황금 티켓이 당첨되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선 할아버지와 찰리가 함께 부르는 “I've Got a Golden Ticket”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윌리 웡카의 테마 “Pure Imagination” 등이 추가되었다.
71년판에서는 웡카의 몇몇 대사들이 셰익스피어나 오스카 와일드 등의 작품에서 따온 문구를 활용한 '문학적 인용'이 많은 반면, 버튼판에서는 <가위손>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플라이> <흡혈식물 대소동>등의 영화 장면이나 대사를 패러디함으로써 '영화적 인용'에 치중했다.
두 영화 모두 결말 부분에서 작은 반전이 준비되어 있는데, 71년판이 원작에 등장했던 웡카의 라이벌 슬러그워스 씨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버튼판은 원작 자체의 결말을 살짝 뒤집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제목은 버튼판이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으나, 71년판에서는 제작비를 지원한 제과회사 퀘이커 오츠 컴퍼니가 영화의 공개와 함께 윌리 웡카 초콜렛을 발매한다는 계획에 따라 원제의 ‘찰리’를 ‘윌리 웡카’로 바꾸었다. 그러나 정작 윌리 웡카 초콜렛은 제조상의 오류로 상온에서도 녹아버리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어, 출시된 제품은 전량 회수되었고 결과적으로 영화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관련 추천 DVD
<초콜렛 천국>이것이 바로 본문에서 언급한 71년판 작품.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세트와 즐거운 뮤지컬 넘버, 조니 뎁 이상으로 매력적인 진 와일더의 윌리 웡카 등 볼 거리가 풍부한 작품이다. 원작의 인기에 버금가는 가족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며, 풍자적인 성격은 버튼판 이상으로 충실하다. 국내판 DVD는 아쉽게도 1.33대 1 스탠다드 화면비만을 지원하지만 음성해설과 아역배우들의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메이킹 다큐멘터리, 극중의 노래를 가사와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싱어롱 메뉴 등 영화만큼이나 흥미로운 부록을 담고 있다. (워너 브라더스 출시)
<네버랜드를 찾아서>조니 뎁과 프레디 하이모어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전에 공연했던 작품. 유명한 동화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배리가 한 이혼녀 가족과 만나 걸작을 쓰게 되는 영감을 받는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항상 평범을 거부하는 캐릭터를 연기해 온 뎁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무엇보다도 피터 소년 역의 하이모어야말로 이 영화 최대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환상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절묘한 연출도 훌륭하다. DVD는 충실한 음성해설을 체크할 만하다. (브에나 비스타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