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김정은 주연 <사랑니>, 언론에 첫 공개
2005-09-22
글 : 문석
<사랑니>

서른살 학원강사와 열일곱 수강생의 사랑이야기 <사랑니>가 첫 선을 보였다. 최근 <루루공주>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정은이 주연한다는 점과 <해피엔드>를 만든지 6년만에 신작을 만드는 정지우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시사회장인 서울극장은 꽤나 붐비는 분위기였다.

간략한 줄거리만 보면 ‘불륜’ 혹은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이야기’로 비치지만, <사랑니>는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멜로 장르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정지우 감독의 이야기처럼, 이 영화는 기존 멜로영화의 공식으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다. <사랑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지점은 영화의 구조다. 이 영화는 인물과 시간을 교묘하게 뒤얽어놓아 일말의 혼란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혼란’은 <사랑니>를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요소다.

영화의 전반부까지만 본다면, <사랑니>는 다른 멜로영화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대입학원의 수학강사 조인영(김정은)은 어느날 학원의 수강생 이석(이태성)에게서 자신의 첫사랑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이석이 자신의 첫사랑과 이름도 같고 얼굴도 똑같다고 생각하며 서서히 그에게 빠져든다. 인영은 삼청동의 한옥을 함께 쓰고 있는 남성 룸메이트 정우에게 “나 그애와 자고 싶어”라고 고백하며 사랑의 열병에 걸렸음을 시인한다. 혼란이 발생하는 지점은 서른살 조인영과 열일곱 이석의 사랑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나오는 열일곱 조인영(정유미)의 이야기다.

서른살 조인영의 회상처럼 보이는 이 장면들에서, 인영이 애초 사귀던 사람은 이석의 쌍둥이 형 이수였으며,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이수가 죽은 뒤 인영의 사랑은 이석에게로 옮겨간 것으로 묘사된다. 얼마 뒤 이석은 어디론가 이사를 가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열일곱 인영이 이석을 만나기 위해 학원으로 찾아와 서른살 인영과 맞딱뜨리게 되면서 앞선 장면들이 13년 전이라는 먼 과거가 아니라 얼마되지 않은 과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속임수’는 아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열일곱 인영의 이야기는 얼마간 서른살 인영의 이야기와 중첩되고 혼란은 가중된다. 게다가 서른살 조인영의 첫사랑, 그러니까 서른살의 이석이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니까 현재의 시점에서 서른살 조인영과 이석, 열일곱의 조인영과 이석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 네 사람은 비슷한 모양새의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간담회에서 정지우 감독은 이에 대해 부연설명을 했다. “이 영화는 한 여자의 주관적 심리적 상황을 일관되게 쫓아가고 있다. 마음이 실제적이거나 사실적이 아니듯, 실제의 모습과 영화적으로 묘사되는 모습의 경계가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마음의 지형인지에 대해 열어놓고 이해하면 된다”고 ‘열린 해석’을 주문했다.

“최근 한국영화 중 가장 영화적”이라는 한 영화평론가의 이야기처럼, <사랑니>는 구조 이외에도 여러가지 장점을 가진 영화다. 주인공의 내면은 자질구레한 설명이나 내레이션 대신 하나의 신 안에서 압축된 화법과 조형미를 갖고 묘사된다. 한 화면 안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필수적인 디테일에 대한 집요한 추구 또한 최근의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 삶의 아이로니컬한 반복성이나 때때로 발하는 인생의 마술같은 순간들도 애잔한 감성 안에서 선명하게 포착된다.

기자간담회장에서 빗발친 ‘그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등의 질문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은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서른살 조인영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멜로 장르의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점 중 하나가 남성의 시각에 비춰진 대상화된 여성이 아니라 여성의 시선을 중심에 놓고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을 묘사했다는 점이다. 그녀 주변의 남자들이 그녀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에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각하지 않았다”는 정지우 감독의 말은 이 영화 속을 여행하는 데 유용한 하나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사실, <사랑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혼란’은 다분히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여러 장면을 해석함에 있어서 여러가지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지우 감독의 의도는 관객으로 하여금 ‘해석의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기억의 창고 안에 각기 다른 버전의 <사랑니>를 보관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니>는 논리와 이성보다는 직관과 감성으로 바라보야할 영화이기에 올해 발표된 영화 중 가장 분분한 해석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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