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로맨스는 급류를 타고, 존 휴스턴의 <아프리카의 여왕>
1999-12-21
글 : 홍성남 (평론가)

머나 먼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날아온 영화 촬영팀이 있다. 한데 팀을 인솔해야 할 감독이라는 작자가 촬영을 위한 장소 헌팅에는 통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는 코끼리 ‘사냥’을 할 양으로 이 먼 곳까지 온 것 같은 그런 인상마저 준다. 이 촬영팀이 얻을 성과란 게 어떤 것일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은 또 한편의 외면당한 걸작 <추악한 사냥꾼>(White Hunter, Black Heart, 1990)은 마초 성향이 짙은 한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예술적 광기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다.

여기서 먼저 이런 의문을 제기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까지 대책없이 무책임한 영화감독이 있을까? 극히 드문 경우라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존재했던 건 분명한 사실인가보다. 문제의 그 인물은 바로 존 휴스턴으로, <추악한 사냥꾼>은 그가 콩고에서 <아프리카의 여왕>을 찍을 때의 이야기를 기초로 만든 영화이다. <추악한 사냥꾼>의 원작은 <아프리카의 여왕>의 최종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던(하지만 크레디트에는 오르지 않았던) 피터 비어텔이 쓴 것인데, 호탕한 성격의 휴스턴 감독은 소설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지 않았으며, 자기가 직접 영화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어텔의 소설이 순전한 논픽션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추악한 사냥꾼>은 영화의 완성은 고사하고 감독의 무모한 용기가 한 흑인 안내인을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극으로 끝맺는다. 반면 휴스턴 감독은 야생동물들, 말라리아, 이질 등 갖은 장애물과 힘겹게 싸워가며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것도 자신의 대표작들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꼽힐 만한 작품을 말이다. 로케이션 촬영이 지금만큼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에 그가 이렇게 힘든 작업을 고집한 것은 영화의 이야기에 핍진성을 더하기 위해서였다. 휴스턴은 자신의 남성적 카리스마 앞에 ‘예술적’이란 수사를 기꺼이 붙일 만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C. S. 포리스터의 동명의 원작을 각색한 <아프리카의 여왕>의 배경은 1차대전이 막 발발하기 시작한 즈음 동아프리카의 한 지역. 독일군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바람에 로즈는 그곳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오빠를 영영 잃게 된다. ‘아프리카의 여왕’이라는 조그마한 화물선의 선장인 올넛은 그녀를 다른 문명 세계로 인도해 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럼으로써 이제 이 두 남녀의 오지 탐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폭우, 갈대, 급류와 같은 자연의 위협과 함께 독일군의 공격에도 대항해야 하는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 <아프리카의 여왕>은 1950년대판 <인디아나 존스>라 할 만한 모험(‘즐기기’)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더욱 흥미있게 만든 것은 그 위에 고립된 남녀 커플의 로맨스를 살포시 얹었다는 점. 자연 그 자체인 것 같은 주정뱅이와 자연을 초월하기 위해 태어난 고결한 노처녀라는, 화해 지점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남녀의 대립과 결합은 물론 새로운 종류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고독한 냉소주의자 험프리 보가트와 독립 여성의 표본 캐서린 헵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여기서 샘 스페이드(<말타의 매>)나 필립 말로(<빅 슬립>) 같은 자신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비해 야만의 상태에 더 가까이 간 보가트는 또다른 불가해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 영화로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말론 브랜도를 제치고 오스카를 손에 넣었다.

존 휴스턴 감독

염세주의 스타일리스트

존 휴스턴(1906∼87)의 영화 경력은 흔히 도박사의 태도와 이력에 비교되곤 한다. 즉 그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걸작들과 형편없는 졸작들 사이에 놓인 엄청난 간극을 ‘자유롭게’ 왕복하곤 했다는 것이다. 극에서 극을 오가는 평가를 받은 다양한 작품들을 만든 그였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휴스턴적인 것’을 구별해내곤 한다. 일단 그만의 독특한 주제라면 어떤 원형에 대한 강박증적인 탐구를 들 수 있다. 이는 <말타의 매>(41년) <시에라 마드르의 보물>(48년) <모비 딕>(56년) 등에서 볼 수 있는 휴스턴식의 주제. 한편 종종 비참한 결말로 귀착되는 염세주의의 태도와 이 이야기들을 그려내는 뛰어난 시각적 스타일 역시 휴스턴의 영화 세계를 이루는 요소들. 여기에 또 한 가지를 들라면 아마도 험프리 보가트에 의해 가장 잘 체현되는, 냉소적이면서도 로맨틱한 주인공일 것이다.

권투 선수, 화가, 기자, 멕시코 기병대원 등 참으로 다양한 길을 거쳐 할리우드에 이른 휴스턴이 여기서 처음 한 일은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것이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꽤 두각을 드러낸 그에게 영화사는 ‘작은 영화’를 한번 맡겨보았는데. 그렇게 해서 그의 데뷔작이 된 작품이 바로 <말타의 매>. 필름 누아르의 고전이 된 이 놀라울 만한 데뷔작으로 감독의 길에 접어든 휴스턴은 <시에라 마드르의 보물>, <아스팔트 정글>(50년), <아프리카의 여왕>, <팻 시티>(72년), <프리찌스 오너>(85년), <사자>(死者, 87년) 등 다수의 걸작들을 발표했다. 그의 이력에서 특이한 점은 자신의 감독작으로 아버지와 딸 모두에게 오스카를 쥐어줬다는 사실. 그의 아버지 월터 휴스턴은 <시에라 마드르의 보물>로, 그리고 딸 안젤리카 휴스턴은 <프리찌스 오너>로 각각 아카데미의 환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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