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돈 좀 될까?' 김주만(38)씨는 하와이의 친척집에서 1년간 머물면서 그동안 써두었던 시나리오 <삼양동 정육점 이야기>를 호형하는 프로듀서에게 보냈다. 돌아온 건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 좋은 기회라 여기고 98년 영화진흥공사 판권담보융자 시나리오 심사에 응모했다. 결과는 1차 통과, 2차 탈락. 그즈음 <노랑머리>를 제작한 여한구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삼양동 정육점> '개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매상은 좋지 않았다. 서울의 대여섯 극장에 걸린 지 2주일 만에 모두 간판을 내렸다. "흥행은 기대하지 않았어요." 김주만씨가 보험금을 노린 한 남자의 사기극에 관한 기사를 읽고서 떠올린 건 사랑얘기. 다만 애틋한 감정의 주고받음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파놓은 질퍽한 구덩이에서 허우적대다 결국엔 자멸하는 그런 사랑을, 자신이 살았던 삼양동 시장 한복판에 던져놓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물론 평단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지만, 시나리오의 잠재력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김주만씨는 한양대 국문과 82학번이다. 하지만 졸업장은 없다. 대학 생활은 2년으로 접고 도쿄 비주얼 아트스쿨 2년 과정에 입학했다. 그땐 몰랐지만 필수전공으로 들어야 했던 1년 과정의 사진 과목은 시간을 쏟아부은 만큼 두툼한 밑천이 됐다. 정식 스탭은 아니었지만 카메라 트랙 이동차를 밀면서 '8월의 광시곡'의 지휘자인 구로사와 아키라를 넘보았던(?) 그때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이후 95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조감독으로 충무로 길을 튼 뒤 주로 시나리오 습작을 해왔다. 요즘 그가 연출까지 맡아 콘티 구상중인 <7인의 새벽>도 <삼양동 정육점>과 같은 시기에 써두었던 것. 그는 이 작품을 동트기 직전 편의점에 모인 일곱 인물들의 삐딱한 시선을 보여주고 낄낄거림을 들려주는, 일종의 통쾌한 소극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나리오가 좋아야 영화가 좋다는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역할은 이야기의 얼개와 테마를 일차적으로 구성할 뿐이다는 것이다. "톤과 흐름과 색깔, 때론 메시지까지, 영화의 알맹이를 결정하는 건 감독"이라는 게 그의 소신. 소재를 채취해서 보기좋게 묶어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영화든 가리지 않고 본다. 16mm 에로영화에서도 건질 건 있다고 여기는 '잡식성'이다. 에드우드 필름이라고 이름 붙인 자그마한 사무실은 내년 봄을 겨냥한 <7인의 새벽> 준비로 분주하다.
1962년생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2년 중퇴 도쿄 비주얼 아트스쿨 졸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조감독 <삼양동 정육점> 시나리오 <7인의 새벽> 준비중<연출 및 시나리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