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배고픈’ 만화, 영화화가 탈출구?
2005-09-29
글 : 임인택

요즘 한국 만화, 죽을 맛이다. ‘못 받은 원고료 받기’가 만화 잡지의 기획거리가 되는 실정이다. 구제금융 위기 당시, 너나없이 차린 만화 대여점을 통해 더는 시판용이 아닌 대여용으로 만화는 전락했다. 대형 만화출판사의 한 이사급 인사는 쏟아붓는다. “만화 하다가 영화로 가고, 게임으로도 가고, 아님 아예 외국으로 간다. 돈이 안 되는데 누가 그리겠는가?!”

만화는, 굶거나 그야말로 세련된 아이디어를 벼려야만 일용할 양식이 구해지는 초절정 서바이벌 장르가 됐다. 그래서 더 반갑다. 영화와 만화의 만남이 최근 불 붙었다. ‘이야기’에 굶주린 영화, ‘희망’에 굶주린 만화가 만난 셈이다. 중심엔 인터넷 만화가 강도영씨가 있다. 올 하반기, 그의 작품이 원작이 되는 3편의 영화가 크랭크인 될 것 같다. 모두 6천만 페이지뷰를 기록했던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의 <순정만화>(류장하 감독)는 현재 배우 섭외 단계에 있다. ‘미스터리 심리썰렁물’을 내세운 <아파트>는 <가위> <폰> 등 공포영화를 주전공 삼던 안병기 감독이, 바보의 슬픈 연정을 연기설에 기반해 그린 <바보>는 <동감>의 김정권 감독이 만들어 다음해 5월께 개봉할 참이다. 지금 인터넷 연재 중인 스릴러물 <타이밍>도 일찌감치 청어람(투자사)과 판권계약을 했다. 박기형 감독(<여고괴담>)은 2007년 초 개봉을 예정한다. 다들 원작과 감독의 특장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허영만씨의 <타짜>와 <식객>도 마찬가지. 특히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 영화 <비트>나 <48+1>의 원작을 영화로 탄생시킨 ‘허영만+싸이더스FNH(제작배급사)’의 조합은 그 자체가 이슈다. 이현세씨의 <공포의 외인구단>(1986년)이 만화로서 처음 실사 영화화한 지 20년째 되는, 오늘의 풍경이다.

지난 22일,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이 정책자료집을 내놓으며 만화의 위기가 노정된 이유 하나를 설명했다. 2001년부터 5년 동안, 정부의 만화산업 지원액은 77억4200만원이었다. 영화 쪽은 물경 2692억3500만원에 달했다. 거의 35배. 위압적인 수치다.

지방의 작은 서점에까지 정부 지원이 닿는 프랑스는 뒤로 하더라도, ‘나라님’이 구제하기는커녕 거리를 더 벌여놓은 문화 장르 간 계급 차는 어느 나라보다 두드러진다. ‘영화’가 빚졌다는 말이 아니다. ‘만화’의 상대적 박탈감이 클 것이란 이야기다.

영화가 졸렬하면 “만화 같다”, 만화가 근사하면 “영화 같다”고들 한다. 강도영씨는 그게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만화는 내가 잘 알지만, 영화는 그들이 잘 안다”며 “내가 설정한 작가로서 권한은 계약까지다”라고 말한다. <타이밍>을 제작하겠다고 나선 14곳 가운데 하나를 고른 허리 꼿꼿한 ‘갑’이, 제작에 들어간 뒤부턴 돌갓 쓴 선비처럼 숙인 채 영화 쪽의 역할을 존중한다.

이젠 영화사가 애초 영화를 전제로 한 만화 제작에 투자하려고 나선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만남은 겸손해야 할 것 같다. 국가 정책적, 또는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맏형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영화 쪽 자세가 아무렴 중요하다. 상생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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