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일본에서 살던 집 건너편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내외분이 운영하던 꽤 큰 영화관이 있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방과 후면 늘 그 곳에 가서 영화도 보고, 두 분과 저녁도 먹곤 했다. 유년 시절 영화관은 하교 후 가방만 던져놓고 달려 나가는 놀이터였던 셈이다.
그렇게 보기 시작한 영화 중 선명하게 기억 되는 첫번째 영화가 저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몇 번을 보고 또 봤다. 아름다운 스칼렛, 비비안 리. 그는 단번에 내 시선을 빼앗아 가버린 ‘너무나도 예쁜’ 기억 최초의 ‘서양 여성’으로, 이후 내 인생의 모델이자 미적 감성의 원천이 되어 버렸다. 철없고, 가냘프게만 보이는 그가 석양 무렵 당근을 뽑으며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라거나, “신께 맹세코 앞으로 나는 더 이상 배고프지 않겠어, 내 가족을 굶주리지 않게 하겠어”라며 되뇌던 모습은, 그때까지 내가 갖고 있던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180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당시 내 머리 속 여성의 이미지는 자기 의사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고, 항상 ‘네, 네’ 머리 조아리던 수동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영화 속 스칼렛, 서양 여성 비비안 리는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속에는 뜨거운 열정이 있고, 귀엽고 발랄하지만 때로는 강인하고 격정적이기까지 한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 내게 또 다른 ‘삶’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후 나는 자유롭고 능동적인 서양 여성의 매력에 흠뻑 빠져 <애수>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비롯해 비비안 리, 오드리 헵번 등이 나오는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보게 되었는데, 그 때 본 영화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이해와 예술적 감성을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쓰면서, ‘영화’와 그녀들은 내게 삶을 보여준 모델이자 발레를 만나게 해준 숨은 주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실제로 다양한 배역에 도전하며 적극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바지를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계단에 앉아 있던 오드리 헵번(<사브리나>)은 어린 내게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가 <어두워질 때까지>란 스릴러 영화에서 눈이 먼 역할로 출연했을 때는 그 변신, 도전에 존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그들을 통해 나는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에, 그리고 음악에 심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뮤지컬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감동은 나에게 음악적 감성을 깨워준 것 같다. 이 후 뮤지컬 영화를 특히 좋아하게 되어 <사운드 오브 뮤직> <메리 포핀스> 등을 빼놓지 않고 봤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애수>에서 발레단의 가장 예쁜(!) 발레리나로 나왔던 비비안 리의 모습은 이 후 나를 발레로 이끈 장본인은 아니었을까?
발레 무용수로 있을 때 나는 <백조의 호수>를 특히 좋아했다.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백조 오데트가 강하고 유혹적인 흑조 오딜로 변신하는 그 순간이 정말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삶에서도 그러한 변신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항상 다양한 모습에 도전하는 모습 말이다. 물론, 내 삶의 모델이었던 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