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10회 부산국제영화제 뭘볼까
2005-09-29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거장감독들 ‘묵직한 성찬’ 신인감독들 ‘톡톡 디저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부산 영화제가 상영편수와 상영관을 대폭 늘렸다고 여유부렸다가는 후회할 일이다. 지난 23일 예매를 시작한지 나흘만에 개·폐막작을 비롯해 38편이 이미 매진됐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격언을 되새기며 부지런히 상영 프로그램을 뒤져보자.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을 소개한다.

거장 감독과의 악수는 영화제 방문의 기본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
관금붕의 <장한가>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가 부산에 온다. <로제타>에서 고단한 소녀의 현실을 직시했던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는 희망없이 살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된 소년을 따라가는 영화로 감독 특유의 관찰자적 시선이 빛나는 작품이다. 스탠리 콴 감독의 <장한가>는 평범한 집안에서 미녀로 태어난 여성의 수십년에 걸친 삶을 조망하는 영화로 <완령옥>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의 회고적 정서가 40년대 상하이의 고혹적인 분위기에 고즈넉하게 깔린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에르마노 올미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 <티켓>은 기차 티켓을 매개로 하나의 기차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세편의 이야기가 일관되게 특권과 배타성에 대해 문제를 던지는 독창적 영화.

마흐말바프의 <섹스와 철학>
스즈키 세이준의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

카메라에 혹독한 아시아의 현실을 담아온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놀랍게도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섹스와 철학>으로 부산에 돌아온다. 자신의 생일 파티에 네명의 애인을 나란히 불러놓고 진실한 사랑에 대해 역설하던 마흔 살의 남자가 그 중의 한 애인으로부터 초대받고 똑같은 상황을 당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사랑의 기적이란 현실에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 밖에 스즈키 세이준의 황당 뮤지컬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 짐 자무시의 <브로큰 플라워>, 라스 폰 트리에의 <만덜레이>나 시간을 초월해 아시아 각국의 걸작 30편을 한데 모은 ‘아시아 걸작선’ 등 거장들이 차린 성찬이 푸짐하다.

숨은 보석 찾기, 주목할 신인감독들

미란다 줄라이의 <미 앤 유 에브리 원>
모하마드 아흐마디의 <청소부 시인>

칸과 선댄스영화제가 주목한 올해 영화계의 최고 대어는 <미 앤 유 에브리원>이다. 미국 여성감독 미란다 줄라이가 주연까지 맡은 이 영화는 외로운 두 사람과 두 주변 사람들을 엮으며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를 통찰력 있게 짚어낸다. 마약에 취한 젊은이들이 <트레인스포팅>을 연상시키는 영국 영화 <로버트 카마이클의 엑스터시>는 이번 부산영화제 상영작 중 가장 충격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얌전한 고등학생 카마이클이 마약중독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파괴돼가는 과정을 그리며 마지막 30분동안 영화가 보여주는 폭력은 경악할 만하다.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시나리오를 쓰고 모하마드 아흐마디 감독이 연출한 <청소부 시인>은 시인을 꿈꾸는 젊은 청소부가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편지다발을 발견해 읽다가 편지의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로 낭만성과 비관적 현실이 절묘하게 하모니를 이룬다. 중국계 미국인 감독 마이클 강의 <모텔>은 엄마를 도와 모텔의 잡일을 하던 소년이 한국계 미국인 투숙객과 친해지면서 세상의 잔인함을 알게 된다는 잔잔하면서도 쓸쓸한 성장담이다.

물좋은 한국영화, 부산에서 먼저 본다

조창호의 <피터팬의 공식>
윤종빈의 <용서받지 못한 자>

젊고 재능있는 한국감독들의 영화를 가장 먼저볼 수 있는 곳은 부산이다. 올해도 ‘새로운 물결’을 비롯해 다양한 부문에 초대된 한국의 젊은 영화들이 예사롭지 않다. 조창호 감독의 <피터팬의 공식>은 자살미수한 어머니 옆에서 삶의 의욕을 잃은 고3 소년 앞에 두 여자가 나타나면서 이 내성적인 소년이 겪는 성장통을 서정적이면서도 냉정하게 묘사한 수작. 실제 군대 안에서 찍은 <용서받지 못한 자>는 윤종빈 감독의 중대 영화과 졸업작품이다.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군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주인공이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미스터리식으로 재구성한 연출력이 탁월한 작품이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안슬기 감독의 <다섯은 너무 많아>는 사회의 변두리로 몰린 사람들이 형성하는 유사가족 이야기로 인물 묘사와 아웃사이더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좋은 느낌을 준다. 이밖에 지난해 ‘새로운 물결’ 부문에서 수상한 이윤기 감독 차기작 <러브 토크>와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의 두번째 영화 <잠복>도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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